역시 말을 잘해야 작가가 될 수 있나 보다. 적어도 내가 만난 작가님들은 모두 다 달변가였다. 어찌나 말을 재밌고 맛깔스럽게 하는지 시간이 훌쩍 가는 마법을 매번 경험한다.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책도 별로 읽지 않았지만 '브런치 스토리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후 책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며 운이 좋게 작가와의 만남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역시 아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보이는 거다.
이번에 만난 분은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아무튼, 여름' 등 많은 책을 출간한 김신회 작가님이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책들이라 제목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써드림 첨삭소'에도 작가님이 몇 번 출연을 하셨고 덕분에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도 쌓여 있는 상태였다.
작가님을 만난 곳은 '2025 성찰과 치유의 글쓰기 직무연수-독서로 성찰하며 일상에서 글쓰기'라는 제목의 글쓰기 연수였다. 공문에서 연수 계획을 보자마자 신청을 놓치지 않으려 알람까지 해놓았다. 신청 당일이 되자 교육연수원에 접속하여 로그인을 한 후 9시 정각이 되자마자 F5 키를 누르고 새로고침을 하였다. 바로 개설예정에서 신청 중으로 바뀐 버튼을 눌렀다. 수강신청에 성공하지 못할까 봐 콩닥콩닥했던 내 심장은 수강 승인 알림 톡을 받은 후 비로소 안정이 되었다. 5일간의 직무연수로 시간은 퇴근 후인 오후 5시부터 7시 50분까지 였지만 28초 안에 마감이 되었다는 교육연구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을 더욱 칭찬하였다. 많은 분들이 성찰과 치유를 원하고 있고 누구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업무 끝내고 바로 오시느라 힘들죠? 제가 힘들지 않게 해 줄게요."
김신회 작가님의 첫 멘트는 상큼했다. 업무에 찌든 연수생들의 얼굴이 안타까웠던 건지 작가님의 친근감 있는 멘트가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먼저 간략하게 본인 소개를 하셨다. 2008년부터 해마다 책을 한 권씩
꾸준하게 내셨고 작가가 된 지 거의 20년이 다 되가지만 아직도 작가라는 직업이 어렵다고 하셨다. 나도 올해 교사가 된 지 20년 차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 작가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현재는 '여름사람'이라는 이름의 1인 출판사를 경영하신다고 하였다. 멋지다.
원래는 MBC 방송국의 공채작가로서 '일밤', '개그야'와 같은 프로그램을 맡은 예능작가셨다고 한다. 방송작가도 좋았지만 출연자의 말을 쓰는 직업이었고 호흡이 너무 빨랐으며 유행에 민감하여 에너지 소진이 빨리 되었다는 경험을 진솔하게 말씀해 주셨다. 예능 작가로서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쓴 글이 없어졌고 이는 결국 공허함이라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작가님 속에 본인의 말은 더 쌓였고 결국 첫 책인 '도쿄 싱글 식탁'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대단함을 느꼈다. 과감한 선택이 멋지다.
김신회 작가님의 강의 주제는 '일상 열심히 쓰기'였다. 글 쓰기 전에 좋은 활동들로 나에 대한 리스트 만들기를 추천하셨다. 글은 곧 '나'이고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작업이다. 작가님 덕분에 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았다. 중고등학생 때 친구와 '교환일기'를 썼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나에 대해 자세하게 생각해 본 적이 근래에 별로 없었는데 재밌으면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글쓰기가 '나 리스트'로부터 시작이 될 수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였다. 뭘 써야 할지 모를 때 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나의 글쓰기 스타일과도 잘 맞는 듯하였다.
글 쓰기 전에 하면 좋은 활동들도 소개해주셨다. '모닝페이지'라는 활동으로 미국의 한 작가인 '줄리아 카메런'이 제안한 매일 글쓰기 실천방법이다. 매일 아침 30분에서 3시간 동안 조용한 장소에서 혼자, 손으로, 수첩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손으로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게 훨씬 편한 나에게는 쉽지 않아 보였다.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아침 5분도 빠듯한데 매일 아침 글을 쓰라고?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변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이 있으면 평소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쓸 수 있다. 손으로 글을 쓸 때 완벽하게 쓰라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쓰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나중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모닝페이지 활동이지만 변명이나 핑계를 댈 수도 없는 상황이 되면 도전해 볼 것이라 '내 마음속에 저장'을 해둔다. 지금은 자신이 없다.
글 쓰기 전에 하면 좋은 활동 2번째는 '10분 글쓰기'이다. 작가님은 말도 빠르고 전체적으로 편안하며 웃는 얼굴을 가졌다. 첫인상은 외향인으로 보였지만 소개하는 활동들을 보면 내향인임이 분명하다.
1. 혼자 있는 시간에
2. 좋아하는 펜과 수첩에
3. 지금, 여기서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쓴다.
4. 쓴 글을 지우거나 고치지 않는다.
5. 쓸 말이 없더라도 종이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내용이었다. 컴퓨터 작업은 수정이 너무 쉬우므로 꼭 손으로 쓰는 것을 추천하셨다. 지우거나 고치지 않는다는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과정 자체가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니 신박하였다. 쓸 말이 없더라도 종이를 채운다는 팁도 아주 좋았다. 처음부터 무겁거나 완벽하지 않아서 이것은 쉽게 도전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서 제일 어려운 과정은 좋아하는 펜과 수첩을 찾는 것이다. 나의 책상에는 어디서 받은지도 모르는 볼펜 수십 개가 있고 좋아하는 수첩을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 나에게 수첩이라는 존재는 메모하는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첩을 좋아하게 만들라니 역시 재밌는 발상이다. 이것들을 찾는 과정도 재밌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펜은 0.3mm의 아주 얇은 펜으로 어느정도 찾아놓았다. 메모장이 널려있는 시대에 수첩을 돈 주고 사기에 좀 아깝기는 하지만 작가님을 한번 믿고 좋아하는 수첩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 봐야겠다.
주로 에세이를 쓰는 나에게 작가님의 강의는 몰입하기 딱 좋았다. 글 쓸 때 생기는 다양한 고민들을 공유해 주셨고 식상하지 않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 많은 내용을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말씀해 주셔서 그 안으로 더 빨려 들어갔다.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래,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아주 조금씩 꾸준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다이어트처럼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한 문장이 말이 쉽지 결코 쉬운 활동이 아니다. 어서 빨리 내가 좋아하는 수첩을 발견해야겠다. 하루에 한 문장도 못쓰는 이유가 아직 내가 좋아하는 수첩을 발견하지 못해서라고 하기엔 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끝맺음에 대한 고민을 질문하였더니 작가님은 '결국 독자를 의식하기 때문에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라고 하셨다. 교훈은 결국 그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고 셀프 서비스이기 때문에 꼭 교훈이나 울림을 주는 말로 끝낼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진정성 있게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독자를 너무 의식하다 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서 많이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포인트라고 하셨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교훈이나 깨달음을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그놈의 '울림'도 그만 쓰라고 하신 부분에서 너무 공감이 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경험을 활용하고 첫 문장보다는 끝 문장에 더 신경을 쓰라는 팁도 주셨다. 결국 나의 진심이 맞는지 나 자신은 알고 있으므로 나를 속이지 않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겠다.
이번 작가님과의 만남에서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 브런치스토리를 막 시작할 때는 나에 대해 더 알고 나를 더 사랑해 주기 위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은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목적이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공감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글을 쓴다. 돈이나 지위, 명예 같은 현실적인 목표보다 사랑받고 싶은 목적으로 쓰는 것 같다. 책을 출간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책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만 내는 생각이 아직도 나에게 지배적이다. 글 쓰는 자체가 좋으며 발행 버튼을 눌렀을 때의 쾌감은 해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도파민이 터지는 순간이다.
물론 나 같은 초짜 브런치스토리 작가에게도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은 있다. 주로 에세이를 쓰므로 나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고 이것을 글로 그대로 풀어내기만 하면 되지만 쉽지 않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면서 모든 창작하는 사람들을 예전보다 더 존경하게 되었다.
남들이 하지 않은 나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일지라도 나만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내 글에 대한 타인의 피드백을 감당할 수 있는지 작가님이 연수생들에게 질문을 하셨는데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내 글의 첨삭 또는 피드백이다. 낱낱이 파헤쳐지고 싶고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은 내가 글쓰기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이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므로.
한 2주 동안 글을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학부모공개수업, 체육대회 등 행사를 치르느라 글쓰기를 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아직 1순위가 아닌가 보다. 그즈음 브런치 스토리에서 알림을 하나 받았다.
글쓰기에 대한 게으름에 괜히 찔려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였다. 처음의 열정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일상의 고단함을 핑계로 삼지 않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 '발행'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은 나의 생각이 글쓰기를 꾸준하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김신회 작가님의 말씀처럼 '나'에게 집중하는 글을 써보는 방향으로 하루에 한 문장씩 조금씩 써보고자 노력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좋아하는 수첩을 하루빨리 찾아야겠지? 생각만 해도 살짝 설렌다. 40대 중반의 나이로서 설레는 일이 도통 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수첩을 찾는다는 거 하나만으로 일상의 활력이 조금 생길랑 말랑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