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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역사교육여행

이성계역사탐방

by 느긋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도 물론 좋지만 잘 모르는 전국의 초중등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역사교육여행은 나에게 더 힐링의 시간이다. 가족 여행과 달리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되고 오히려 진행 요원분들에게 챙김을 받으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 연수나 교육여행을 떠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주로 혼자 신청해서 아는 동료 교사 없이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 교육여행은 친한 S언니와 함께하여 더 신이 났다.


집결지인 전주로 향하는 내내 하늘은 푸르렀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고생처럼 끝이 없었다. 주부, 엄마, 아내, 선생님의 역할옷은 마음 한구석에 고이 접어 두고 2일 동안 집과 학교 생각은 일부러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전주 톨게이트에서 보이는 한옥지붕은 이 두근거림을 더욱 반짝이게 해 주었다.


집결지에 도착하니 빨간색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일찍 출발한 덕에 여유롭게 차에 오를 수 있었다. 등록부에 서명을 한 후 일정이 적힌 목걸이를 목에 거니 역사교육여행 시작이 실감 났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주관을 하고 역사콘텐츠연구소에서 진행을 한 이번 1박 2일 동안의 역사교육여행 주제는 '이성계역사탐방'이었다. 해설사님과 진행 요원들의 간단한 소개 후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의 지역과 이름을 말하는 시간도 새로웠다.


첫 번째 일정은 전북 임실의 상이암이었다. 성수산 왕의 숲에 있는 곳으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기가 어려있는 곳이다. 건국 전 간절히 치성을 드리던 곳으로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리며 직접 심었다는 청실배나무가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려 꾸준히 성장하여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상이암의 명물인 화백나무도 설명을 들으니 영험함까지 느껴졌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아홉 가지가 강하게 뻗어 올라가는 나무로 아홉 마리 용이 기운을 발하여 모여드는 형국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쨍쨍한 햇볕으로 여름을 제대로 느끼는 날이었지만 화백나무 그늘 아래는 시원하여 나무의 기운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해설사님이 소원을 빌라고 해서 바위에 손을 대고 마음속의 염원하는 바를 생각하기도 하였다. 해우소 가는 길에 있는 동자승의 귀엽고 익살스러운 표정의 장식품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나를 웃게 만들어 주었다.



그다음 일정은 치즈로 유명한 임실 치즈테마파크이다. 올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을 하는 곳으로 초록초록한 기운과 알록달록한 꽃들이 그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막 구워낸 치즈피자와 치즈돈가스, 크림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더위에 살짝 지치고 배가 고픈 탓에 더 맛있는 것도 있었겠지만 임실치즈의 맛은 확실히 더 고소하고 잘 늘어났다. 식사 후 치즈역사문화관에 들러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우리나라 치즈 역사도 살펴보았다. 벨기에 태생의 지정환 신부님이 산양 2마리로 시작한 치즈가 오늘날의 임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로 치즈 공장을 설립하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1969년 체다 치즈에 성공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치즈 산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농민과 장애인 분들을 위해 헌신하다 88세를 일기로 선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의 나라를 위해 이렇게까지 애써주신 파란 눈의 '임실 지 씨'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실제로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었고 노란색으로 잘 밀폐된 치즈를 보니 막 만든 치즈도 한번 맛보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인정받은 전북 진안군의 마이산(馬耳山)이 다음 목적지였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으로 불리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80개의 선탑군과 역고드름이 생기는 신비로운 곳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은수사가 있는 곳이다. 수마이봉을 정면에서 보니 사람 얼굴 같기도 하고 옆에서 보니 선명하게 코끼리 얼굴처럼 보여서 매우 신기했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마이산 돌탑의 정성스러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위쪽 돌을 쌓기 위해 백일동안 치성을 드렸다고 하니 그 당시 돌탑을 쌓는 사람의 마음과 소원이 궁금해졌다. 강한 비바람과 수많은 세월에도 쓰러지지 않는 돌탑들 사이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심히 한발 한발 내디뎠다. 암벽에 능소화가 예쁘게 폈고 사람의 손으로는 불가능한 곳까지 돌탑들이 쌓여있어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왕조의 꿈을 꾸며 기도를 드렸던 장소로 전해지는데 기도 중에 마신 샘물이 은같이 맑아 이름이 은수사(銀水寺)라 붙여진 사찰이다. 현재 샘물 곁에는 기도를 마친 증표로 심은 청실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왕권의 상징인 금척(金尺)을 받는 몽금척수수도와 어좌 뒤의 필수적인 그림인 일월오봉도가 경내 태극 전에 모셔져 있다. [한국불교태고종]


조선 건국에 대해 그동안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조선 건국을 위한 기도장소까지 와보니 500년 역사의 조선을 가진 건국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금으로 만든 자를 받게 되는 꿈까지 꾸었다고 하니 왕은 역사 하늘에서 내려줘야 가능한가 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최고 인기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공연 장면에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나오는데 은수사에서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K문화의 자부심도 느껴졌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왕실의 어좌 뒤에 필수적으로 모셔졌던, 사사로이 걸 수 없는 해와 달과 다섯 봉우리가 그려진 왕실의 상징 그림이다. 신표를 받은 장소로 알려진 이곳 마이산은 일월오봉도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무대를 하는 케이팝데몬헌터스의 한 장면. 출처: 넷플릭스


진안군의 맛있는 먹거리 등갈비구이와 마이산 막걸리로 배를 두둑이 채우고 진안고원 '치유의 숲' 숙소로 향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을 보니 가정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복도에는 소파가 있어 옛날 집의 응접실 같은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침실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나의 눈을 편안하게 해 주었고 TV가 없는 방은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으러 가는 산책 길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멋진 조형물들이 있었고 산새와 공작을 바라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이성계 역사탐방'의 마지막 일정은 이성계 건국 설화가 있는 '뜬봉샘' 탐방과 장수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승마체험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전국 명산의 산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으려고 먼저 팔공산(신무산)에 들러 신무산 중턱 아담한 곳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백일째 되는 날 새벽에 단에서 조금 떨어진 골짝에서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떠오르더니 그 무지개를 타고 봉황새가 하늘로 너울너울 떠가는 것이었다. 봉황이 떠가는 공중에서는 빛을 타고 아련히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새 나라를 열라'는 천지신명의 계시가 귓전을 스친 것이다. 이성계는 정신을 가다듬고 무지개를 타고 봉이 뜬 곳을 가보았다. 그곳에는 풀숲으로 덮인 옹달샘이 있었다. 이성계는 하늘의 계시를 들은 단 옆에 상이암을 짓고 옹달샘물로 제수를 만들어 천제를 모셨다. 옹달샘에서 봉이 떴다고 해서 샘이름을 뜬봉샘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뜬봉샘이 금강의 발원샘이다. 샘 아래에는 당재가 있는데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 된다. [출처:장수군 문화관광]

뜬봉샘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태전환교육과 힐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곤충들이 살고 있는 곤충호텔과 소나무림, 물뿌리 전망대, 자작나무 힐링숲 등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매우 인상이 깊었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곳이 잘 마련되어 있었고 반가운 개구리도 볼 수 있었다. 딱따구리의 집과 동고비의 아주 작고 소중한 둥지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뜬봉샘에 도착한 후 이성계의 기운을 느끼며 샘물을 손에 적셔보았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흐린 날씨라 오히려 체험하기에 너무 좋았다. 장수승마레저파크에서 장군의 기운을 느끼며 승마체험도 해보았다. 말 높이가 생각보다 높아 무서웠지만 조선시대 장수의 마음을 생각하며 재밌게 체험도 잘 마무리하였다.


이성계 역사 탐방을 하면서 왕의 발자취를 따라가니 조선 건국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더 생겼다. 5학년 2학기 사회 과목은 역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조선 건국 부분이 나오면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보고 영상을 시청하며 역사 지식을 쌓는 것도 좋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현장 탐방을 하니 마음속에 더 오래 간직될 것 같아 이번 역사교육여행도 대만족이었다.


더불어 전북특별자치도에 이렇게 많은 역사적 명소와 맛집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그전에는 치즈로 유명한 임실, 발효테마파크로 유명한 순창, 추어탕으로 유명한 남원 정도만 알고 있었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 홍보를 하기 위해 숙박비 지원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잘 추진하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 활용하고 전북의 숨겨져 있는 지역 관광 명소도 다니며 역사적 의미도 잘 찾아보면 나라 사랑 마음이 한층 더 진해질 것 같다.


아는 만큼 보고 배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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