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후기에 들어서 기절한 적도 있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증상이 계속 되자 언니는 내과에 가보라고 했다. 언니는 산부인과는 내 몸이 아기를 품고 있기에 좋은 환경인지 확인하는 곳이고 내과는 내 몸의 건강을 확인하는 곳이라고 했다. 내과에 가서 증상을 이야기하자 의사 선생님은 심장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20분 동안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내 심장소리를 듣고 심장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았다. 그 순간, 뱃 속에 아이를 보듯 나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내가 나의 엄마가 된 느낌이었다. 항상 아기의 심장만 보았던 내가 내 심장의 움직임을 보며 존재의 안녕을 확인한 것이다.
아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던 순간이 선명히 기억난다. 초음파실에서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자 진짜 엄마가 된 나를 실감했다. 병원에서는 초음파에서 아기집이 보이더라도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어야 임신확인증을 내어준다고 했다. 그렇구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작이 심장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는 구나. 병원을 갈 때마다 가장 좋은 시간이 바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을 때다. 임신 초기에는 의사가 아기의 몸 구석구석 위치를 알려주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꼬물꼬물 귀엽게 움직이는 아기의 움직임에 비해 심장소리는 선명하고 웅장하게 진료실에 울려퍼진다. 녹화된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그 경이로운 소리를 온 몸으로 느껴본다. 깊은 첼로소리 같이 아름답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아기의 심장 소리가 아니라 내 심장 소리를 듣고 있다. 처음 느끼는 감정과 경험이다.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진짜 엄마가 됐구나 깨달았던 그 날처럼, 나의 심장 소리를 듣고 내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깊은 첼로 선율 같은 심장 소리가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 준다.
언제나 나는 내 편이다. 언제나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겠다. 내 심장 소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어주겠다. 나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오롯이 내 편으로서 내 심장 소리를 듣겠다.
엄마의 심장이 건강하게 뛰어야 아기의 심장도 건강하게 뛴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우리 아기가 나 말고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면 너를 닮은 아기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자존감 낮은 나, 항상 겁이 많았던 나를 닮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해도 결국 나와 같은 아이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결국 내가 바로 서야, 아기도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라고. 과연 언니는 멋진 임신 선배다.
“건강하시네요. 임신 때문에 숨쉬기 힘든 거고 출산까지 조금만 참아보세요” 병원에 다녀온 후에도 한동안 귓 속 달팽이관에 내 심장 소리가 쿵쿵 들리는 것 같았다. 배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는다. 옅게 아기의 심장도 함께 느껴지는 것 같다. 내 몸 안에 두 개의 심장이 함께 뛰고 있다. 엄마는 아기의 심장을 느끼며 엄마가 된다. 엄마의 힘차게 뛰는 심장은 아기의 심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