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기간에 아픈 것은 그 원인이 다 임신때문이라 했다. 임신으로 인한 합병증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나는 임산부치곤 제법 건강한 생활을 영위한 듯 하다. 공포의 임신성 당뇨 검사도 무사 통과했고, 경증의 방광염 외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필수 재택근무 대상자가 되어 입덧 시즌을 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져 다시 사무실 출근을 하게 되었을 때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몸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지하철로 통근을 했지만 그래도 제법 자리 양보를 받은 편이기도 했고 컨디션이 좋아져 가끔은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도 만나곤 했다.
임신 9개월 차 되던 때의 일이다. 회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다시 재택근무를 하다가 간만에 사무실 나갈 일이 있어 출근한 날이었다. 집에 있을 때도 건강한 상태였고 출근 당일 아침도 기운이 넘쳤다. 오랜만에 온 사무실에서 휴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답시고 상쾌한 마음으로 짐도 정리하고 아침부터 회의도 했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문서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머리 앞 쪽부터 저릿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있다가 눈을 떠보니 나는 의자에 기대어 있었고 놀란 얼굴의 동료들이 모여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내 옆 자리 선배들은 갑자기 내가 잠든 듯이 눈을 감고 있어서 졸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의자에 힘 없이 축 쳐져 기대어 있었고 눈은 흰자만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아주 짧은 몇 초 간이었으나 숨을 못 쉬는 듯 해서 등을 두들겼더니 켁켁하면서 내가 깨어났다고 한다. 일단 휴게실에서 내 몸 상태를 봤다. 얼굴이 아주 창백하고 식은 땀과 함께 몸이 떨리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회사 앞 병원에 가서 원인을 찾아 보고 다시 돌아오겠다 했다. 하지만 걱정이 됐던 동료들은 만삭의 임산부는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가족처럼 나를 생각해준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떠났다.
여러 검사와 상담을 받고 수액을 맞으며 상태를 보니 저혈당 쇼크같다고 했다. 공복 시간이 길어지고 갑작스레 운동량이 늘어나면서 증상이 왔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활동량 없이 집에서만 지내다가 갑자기 활동량이 많아진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혈당 수치는 정상이었지만 임산부이기에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신을 잃은 내 모습을 내 스스로 보지 못한 탓인지 평소 성격 때문인지, 나는 스스로 이번 일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도리어 동료들이 나보다 나를 더 걱정을 해주는 게 새삼스러웠다. 나는 남편과 언니를 만나 오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주말 일정을 그대로 소화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집에 돌아와 업무를 보기 위해 노트북을 찾고 유튜브 영상을 편집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지껄였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언니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임신한 지금 너 몸을 너라고 생각하지 말고 슬아라고 생각해 봐.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겠어?” 언니가 물었다. 입원도 한 번 안 해봤고 웬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병원을 가지 않는 안전불감증인 내가, 순간 ‘엄마’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다. 만약 우리 아기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면? 회복이 되어 돌아온 뒤에 자꾸 무얼 하겠다고 고집 부린다면? 그 생각을 하고 있자니 쓰러진 후 병원에서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들이 떠올랐다. “아기도 놀랐나 봐요. 조금 떨고 있네요. 그래도 상태는 괜찮아요” 내 몸 보다도 아기가 혹여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그 때 내 감정도 다시금 돌아보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 아이의 삶에 얼마나 많은 위험과 위기의 순간들이 닥칠까. 내 삶에 들이닥쳤던 위험과 위기가 아이의 삶에도 켜켜이 예견되어 있다. 내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운 것인데 내가 엄마에게 이런 아기였다는 사실도 잊고 살고 있었구나. 나도 우리 엄마가 아팠을 때 내 몸이 다친 것처럼 아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몸은 연결 되어 있다. 엄마가 되면 ‘나’를 잃게 되는 순간이 많다던데 그 순간마다 언니의 한 마디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기의 보호자인 나와 남편의 몸은 곧 아이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라는 것. 우리의 몸이 곧 아이의 몸이다. 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이 곧 아이를 위한 길이다.
이벤트를 겪은 후 나는 엄마로서 조금은 성장한 듯하다. 내 아기가 귀하듯, 내 몸도 귀한 것이기에. 외출할 땐 상비약처럼 초콜릿과 사탕, 물을 잔뜩 챙기고 병원 가서도 내 상태를 상세히 말하며 이것저것 묻는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조금씩 자주 먹고 끼니를 대충 넘기지 않으려 한다. 조금이라도 어지러우면 바로 휴식을 취한다. 내 몸을 아기 대하듯 면밀히 살피고 빠르게 대처한다. 뱃 속에 있는 아기에게 너를 소중히 여기는 엄마가 늘 곁에 있다는 걸 말해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