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하에 슬아를 두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세계] 겁쟁이 엄마의 출산썰

by 아리

2020년 가을, 제왕절개로 딸 슬아를 낳았다. 계획이 분명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사람이라 진통이 언제 올지, 언제까지 계속될지 예측이 불가능한 자연분만은 내 성격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수술 전 날, 제왕절개 관련 영상을 모조리 뒤져보며 수술 과정을 익히려고 애썼다. 남들은 몸이 힘들고 아기가 빨리 보고 싶어 빨리 출산하고 싶어한다던데 나는 한껏 부른 배를 보며 10개월 동안 항상 나랑 함께 가까이 붙어있던 아기가 나간다는 게 그렇게 서운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아빠와 통화를 했다. 아빠는 근심이 가득한, 씩씩하지 않은 목소리로 “씩씩하게 애 낳고 오라”고 했다. 남편은 수술복을 입은 나를 보며 갑자기 훌쩍거렸다. 제왕절개 수술이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뭘 우냐고 하며 수술실에 들어왔지만, 수술대에 누운 내 턱은 달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달달달달이었다. 수술대에 누운지 10분 쯤 됐을까. 훌렁하는 시원한 느낌과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갓 꺼낸 아기의 얼굴은 하얗게 태반이 붙어있었다. 그럼에도 작고 귀여운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너구나. 슬아야! 반가워!



그 후 마취에 잠들었다가 깨보니 나는 정신 없이 울고 있었다. 숨이 안 쉬어진다며. 간호사 선생님은 지금 숨 잘 쉬고 계시다며 익숙한 듯 말했다. 내 숨이 잘 쉬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옆을 보니 남편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슬아를 안아보고, 씻겨도 보고 사진도 찍고 왔다고 한다. 나중에 핸드폰 앨범을 열어보니 남편이 슬아를 안고 또 울고 있었다. 남편과 10년 가까이 같이 지내면서 운 적이 거의 없었는데 하루에만 두 번을 울었네.


입원실로 올라와 조금 회복이 되자 주변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들 축하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배가 조금 가벼워진 것 빼고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할만하다고 생각할 때 즈음, 훗배앓이가 시작되었고 고통의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악착같이 일어나서 신생아실로 걸어갔다. 내가 걷지 않으면 아기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대로 맞이한 첫 슬아의 모습.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일단 앞섶을 까고 젖을 물렸다. 젖은 아직 돌지 않지만 이렇게 계속 물려야 젖이 나온다고 했다. 품에 안은 아기는 작디 작고 여리디 여린 생명체였다. 내 배는 그렇게 컸는데 아기는 이렇게나 작다니. 어설픈 자세로 젖을 물리니 열심히 빨아댄다. 설마 젖이 나오나 착각할 정도로 열심히. 아기와 함께 있는 30분 내내 그 치열한 모습을 내 눈에 담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못생겼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못생기지 않아서 안심이었다.


슬아는 조리원 신생아실의 문제아였다. 가장 많이 울고 가장 크게 울었다. 목욕할 땐 내가 묵는 방까지 슬아의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많은 아기들의 울음 속에서 우리 아기의 울음을 구별할 수 있었다. 모자동실 시간에 슬아를 데리러 가면 지친 얼굴의 선생님들이 “슬아가 아직 적응 중인가봐요”라고 말했다. 나와 단 둘이 있는 시간에는 거의 잠만 자기 때문에 대체 선생님들이 왜 저리 눈치를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리원 퇴소 후 집에 와서 모든 걸 알게 됐다. 우리집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숙한 엄마아빠와 우렁차게 우는 아기가 있었다. 예방접종을 맞으러 간 병원에서는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초보 부모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첫째인가봐요? 그렇게 소중히 안고 계시는 걸 보니.”


첫날은 혼돈 그 자체였지만 막상 슬아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 그렇게 예민한 아이는 아니었다. 모유도 금방 적응했고 분유를 바꿔도 탈이 나지 않았으며 크게 아픈 적도 없다. 다만 옆에 눕히고 재우다가 내가 일어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눈을 뜰만큼 육감이 좋은 편이다. 이를 꽉 물고 아무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났는데도 무섭게 눈을 땡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아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180일 차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설프다. 아기가 울면 배고프거나, 기저귀가 불편하거나, 졸리거나, 심심한 것인데 어떻게 해도 울음을 멈추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나는 “대체 엄마가 뭘 잘못했니. 말을 해주면 안 될까” 혼잣말을 한다. 어찌어찌 겨우 달래고 나면 나처럼 소만한 어른도 이렇게 힘든데 이 작고 여린 아기는 얼마나 더 힘들까 생각한다. 내가 힘든 만큼 슬아도 오늘이 힘든 하루였음을 생각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천 번 넘게 젖을 물리고 천 개가 넘는 기저귀를 갈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를 재워보지만 여전히 모든 순간이 어렵다. 그래도 처음 아기를 만났던 그 마음을 떠올리며 아기를 마주한다.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고들 표현하는데 우리 슬아는 내게 소유되거나 속해있지 않다. 그저 내 앞에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향해 있고, 때로는 서로를 마주하기도 한다. 나와 슬아는 서로를 마주 보며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 어설펐던 나의 처음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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