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을 기록하는 법

조르쥬 페렉을 모티브로 일상을 진술하기

by 엉클디

아침 7시 28분, 택배차량이 언덕길 아래를 끌고 올라왔다. 삐걱거리며. 어제도 그랬다. 그제도.

이틀 전엔 조금 늦었다. 일요일이었으니까.


상도동, 동작구의 산등성이 위, 그곳은 아직 재개발에서 유예된 채 남겨진 동네다.

마당을 포기하지 못한 노인의 집 앞에선 개가 짖는다. 지독하게 짖는다. 익숙한 소리. 낡은 철문이 덜컥 열릴 때 나는 그 쇠의 울림조차 익숙하다.


통학버스는 골목을 비껴 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발끝으로 신호를 기다린다.

하얀 조끼를 입은 봉사자가 깃발을 든다.

깃발은 종종 늦는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먼저 움직인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초록불이 깜빡이기 전에 뛰어야 하니까.


신문은 여전히 배달된다. 아직.

현관문에 걸린 고무줄에 걸려 있다.

날마다 빠지지 않고.

그 신문을 들고 가는 남자의 왼쪽 어깨는 조금 기울어 있다.

오른손엔 검정 비닐봉지. 아마도 김치나 나물.

그는 멈추지 않는다. 걷는다. 늘 걷는다.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로.


분리수거함 옆에서 고양이가 납작하게 앉아 있다.

박스를 가져가는 노인은 오늘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를 꾸짖는다. 그는 들은 척도 않는다.

그러고는 아주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빨래는 오후 2시쯤 걷힌다. 그전까지는 언제나 걸려 있다.

하얀 러닝셔츠와 베이지색 속옷. 분홍 줄무늬 수건.

그늘이 번진다. 빨래가 흩날린다.

바람은 세지 않다. 그런데도 수건은 춤춘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은 늘 같은 사람이다.

플라스틱 그릇은 빨간색이다.

고양이는 다섯 마리다. 어제는 여섯이었는데.

작은 회색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오후 4시 12분,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축구공을 찬다.

공은 자주 굴러 언덕 아래로 떨어진다.

누군가는 뛰어내려 간다. 누군가는 웃는다.

어떤 아이는 “하지 마”라고 말한다.

그러나 금세 다시 찬다. 다시 웃는다.


저녁이 오기 전에 쓰레기차가 지나간다.

경고음이 울린다. 녹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든다.

집 앞에 놓인 쓰레기봉지는 매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나온다.

검정 봉지엔 주로 음식물 쓰레기.

하얀 봉지엔 포장지, 비닐, 헌 옷, 스티로폼, 맥주캔, 물병.

내용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익숙하다. 매일 보는 것이다.


텔레비전 소리는 벽 너머로 들린다.

트로트가 나온다. 퀴즈 정답 소리. 뉴스 앵커의 저녁 목소리.

시그널 음악. 광고. 광고. 광고.

정확히 몇 초 단위로 끊기는 음악들.


밤이 오고 있다.

골목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완전히 조용하지는 않다.

누군가 설거지를 한다. 물소리.

누군가 전기밥솥을 연다. 김이 샌다.

누군가는 문을 닫는다.

아주 천천히.


나는 앉아 있다.

이 모든 것을 적는다. 적는다는 것은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미 없는 것들의 반복 속에서 장소는 드러난다.

의미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하나하나 전부, 장소였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한 구석에서 내게 묻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조르쥬 페렉, 당신이 말했다.

“당신이 매일 보는 것을 말하라.

당신이 더 이상 주목하지 않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말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답한다.

예, 저는 상도동을 씁니다.

상도동의 빨래줄, 상도동의 개 짖는 소리,

상도동의 고양이 밥그릇, 상도동의 저녁 연기,

이제야 그것들이 말을 걸어옵니다.


장소는 말이 없지만, 쓰는 이가 있을 때, 장소는 말문을 엽니다.

소리 없는 것들이, 글이 되는 순간, 존재는 드러납니다.

보통 이하의 것들이 기록될 때, 장소는 비로소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 이제 당신 없이도 저는 씁니다.

그러나 당신 덕분에, 제가 씁니다.

장소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쓰는 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keyword
이전 13화가장 인간적인 장소감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