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피셔와 리베카 솔닛을 횡단하며
나는 요즘 가끔 걷는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걷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지하철 한 정거장쯤은 일부러 내려 걷는다.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 말할 테지만, 나는 그 ‘비효율’이 좋아서 걷는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라, 나의 두 발로 마주하는 골목과 벽돌, 이름 모를 꽃나무의 잎사귀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문득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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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며 편리해졌다.
기술은 분명 우리 삶을 더 나은 쪽으로 밀어올렸고, 더 많은 선택지를 허락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정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더 모르게 된 것 같다.
자동차는 빠르다.
버스도 지하철도, 이제는 자율주행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달린다.
이동의 고통은 줄었지만, 그만큼 내 몸의 자리는 어디론가 밀려나 버렸다.
몸이 할 일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우리 존재가 기술 속에 조용히 녹아들고 있다는 징후 아닐까.
걷는다는 것은 몸을 되찾는 일이다.
생각을 다시 몸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이다.
에리카 피셔-리체가 말했듯, ‘수행성’이라는 말은 단지 예술적 행위의 문제만은 아니다.
몸이 공간과 만나고, 그 속에서 어떤 감각이 생기고, 또 그 감각이 내 안의 오래된 기억을 두드리는 그 순간, 삶은 비로소 ‘사건’이 된다.
걷기는 그 사건의 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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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다가 자주 멈춘다.
무언가를 보거나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멈추고 싶어서 멈춘다.
도시에선 멈춘다는 것조차 어렵다.
지하철 역에서 쏟아지는 인파 사이에서 멈추는 건 곧 밀려난다는 의미고,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선 차들은 언제 다시 움직일지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해진다.
하지만 걷는 사람은 멈출 수 있다.
그 누구의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걷고, 생각하고, 다시 서는 것이다.
도시는 속도를 명령하지만, 걷기는 그 속도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 된다.
이 저항이, 우리 삶에서 무엇보다 귀한 ‘생각의 시간’을 복원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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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드 세르토는 도시의 보행자를 ‘읽는 이’가 아니라 ‘쓰는 이’로 보았다.
도시는 글이 아니라 초고다.
그 위를 걷는 보행자는, 자신의 감각과 발걸음으로 그 공간에 의미를 새기고,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걸음은 쓰기이고, 쓰기는 기억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걸었던 길이, 나중에 그 사람 없이 걷게 되었을 때 더 많은 말을 건네오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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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행위는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가장 정직한 기술일 것이다.
레베카 솔닛이 말했듯, 걷기는 때로 종교였고, 철학이었으며, 정치였다.
순례자들의 걸음, 철학자들의 산책, 혁명가들의 행진.
그 어떤 이념이나 신념도 결국은 누군가의 ‘걸음’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니 걷기는 그저 구식이고 느린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실천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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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걷다가 도시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동차 경적 사이로 들리는 자전거 바퀴의 삐걱거림, 배달 오토바이의 가쁜 숨결, 그리고 무심한 창문 틈에서 새어 나오는 피아노 소리.
이런 것들은 차 안에 앉아서 들을 수 없다.
그리운 것은 언제나 느린 속도 속에 숨어 있다.
걷는 자만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느리게 걷는 자만이, 도시의 주파수에 몸을 맞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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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철학하는 일은, 결국 존재를 다시 묻는 일이 아닐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지나쳐버리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걷는 속도 안에서는 말을 걸어온다.
간판이 무너진 작은 가게, 담장 위의 고양이, 공사장 옆에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
걷기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 남겨진 흔적들을, 다시 감각하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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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의 시대다.
우리는 오늘도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멀리 나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끝에,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면 어쩌겠는가.
삶은 때로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걷는 자만이 멈출 수 있다.
멈춘다는 것은 되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걷기는 바로 그 생각의 공간을 열어주는,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 아닐까.
그러니 나는 오늘도 걷는다.
이 느린 세계 속에서, 내가 나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