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사피엔스』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
더 많은 지식, 더 빠른 교육, 더 똑똑해진 아이들.
그런데 왜 우리는 점점 더 행복하지 않은 걸까?
『사피엔스』는 교사인 내게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꺼내 들게 했다.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나에게 하나의 벽이었다.
책장 너머로 가닿고 싶으면서도, 미루고 또 미루며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심 끝에,
드디어 첫 장을 넘겼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진짜 벽은 책이 아니라
나의 선입견과 편견이었다는 것을.
역사 교과서 속의 ‘사피엔스’와 나는
같은 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사피엔스의 역사가 내가 속한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하지만 이 책은
그 단순한 역할 정의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질문을 던져왔다.
『사피엔스』는 기존 인류의 역사,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여겼던
그 ‘정답 같은 이야기’에
정면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원래 그런 것”이라며 살아왔다.
물음표보다는 느낌표를 요구하는 교육 속에서
나는 누구보다 성실한 ‘순응형 인간’이었다.
그런데 책은 묻는다.
“왜?”
그 단 하나의 물음이
이렇게 많은 구조와 사고방식을 뒤흔들 줄 몰랐다.
『사피엔스』는 말한다.
인간은 상상의 힘으로 협력하고,
허구를 믿으며 문명을 쌓아 올린 존재라고.
국가, 종교, 돈, 제도—
모두 실체 없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그것을 믿기 때문에 현실이 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멈춰 섰다.
‘교육’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이 문장은 교사인 내가 가지고 있던 물음과 결을 같이 했다.
지금 아이들은,
과거보다 더 빠르게 글자를 배우고, 더 일찍 교육 시스템에 진입한다.
돌 무렵부터 기관에 들어가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이미 글자를 익히고 학교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관계 형성에 서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며,
문해력조차 깊지 않다.
객관적인 지식만 보면
지금의 아이들이 더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성이나 감정 조절 능력,
인간관계에서의 회복탄력성을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런 비교는
마치 농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삶을
바라보는 것과도 닮았다.
정착하며 농사를 지은 인류는
더 많은 식량을 얻었지만,
그만큼 고된 노동과 불평등,
질병과 전쟁을 함께 떠안았다.
오늘의 교육도
더 많은 지식을 주지만,
정서적 그리움이라는 결핍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사피엔스』는 또 말한다.
우리는 ‘표준적인 정당화’라는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고.
그럴듯하고, 익숙하고, 논리적으로 정당해 보이기에
의심하지 않는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이를 위한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어떻게 가르칠까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을, 왜 가르치는가를
다시 묻고,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다시, 물음표를 회복할 시간
“나는 어떤 사피엔스로 살아가고 있는가?”
교사로서의 나 역시
정답을 알려주며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순응의 언어만을 나누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시스템, 더 많은 효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배움인지,
진짜 성장인지,
진짜 행복으로 가는 길인지—
이제는 묻고 또 물어야 할 시간이다.
다시, 질문을 회복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