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엄마는 없다. 나도 성장중이다.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 멀리 있는 시댁에서도 한국에 올 만큼 많은 축하를 받으며 기쁨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첫 아이는 너무나 소중했고, 아이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그 눈빛에 매료되어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황홀함도 잠시, 곧 마주하게 될 현실에 대해 나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작은 보물을 품에 안고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알 수 없는 어둠이 서서히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으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이와 나만 세상에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에게도 분명 출산 후 우울증이 찾아왔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아이를 만지는 것도 싫고, 친정 식구들이나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데려가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냥 나와 아이만 있으면 되는데 왜 모두들 이렇게 간섭할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첫 아이이기에 더 오래 내 품에 안고 싶었고,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이 아이를 지킬 수 있고, 나만이 이 아이의 보호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둘만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도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해 깊이 잠들지 못했고, 밤새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초조하게 시간을 보냈다. 내 아이를 위해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고, 도움을 주겠다는 가족들의 손길조차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분명 모두 나를 도와주려는 마음인데, 왜 이렇게 경계심이 강해졌을까? 왜 혼자만의 책임감을 느끼며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을까?
점점 지쳐가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말로 꺼내면 어쩐지 나약해 보일 것 같았고, '엄마'라는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출산 후에는 누구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냥 나만 참으면 되는 문제라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게 더 큰 문제였다. 내 안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고, 아이에게 집중할수록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은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이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건, 둘째와 막내 덕분이라 생각한다. 3년 뒤 둘째를 품에 안게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막내까지 안을 수 있었다. 하나의 아이에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니, 우울증은 뒷전이었고 ‘누구라도 날 좀 도와줘’라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전에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했지만, 세 아이를 돌보는 현실 앞에서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때는 내가 아이를 독점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둘째와 막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아이들이 늘어나니 아무리 완벽하려 해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아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 오히려 내가 더 자유로워지고, 아이들도 다양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비로소 ‘완벽한 엄마’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나 자신도 잘 돌보는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나지만, 그 사랑이 나만의 힘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출산 후 우울증을 겪으면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를 부족하게 만드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나를 얼마나 더 힘들게 했는지 알게 되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다.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첫 번째 단계였다. 남편이나 가까운 가족, 친구들에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하고 나니,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을 수 있었다. 힘들다면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또한,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헌신하면서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을 잊기 쉬웠다. 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처음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도 우울증 극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면서 나 자신에게 여유를 줄 수 있었다.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리니, 마음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출산 후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엄마도 인간이기 때문에 지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돌보며 성장하는 것이다.
결국, 엄마가 된다는 것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아이를 돌보는 동안 나 자신도 돌봐야 한다는 진리를,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로서 때로는 실수하고 좌절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감정 속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우울감이 찾아올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고, 그들 또한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 자체로도 아이들에게 소중한 존재다.
혹시 지금 이 순간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보자.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출 것이고, 우리는 그 빛 속에서 더 단단해질 것이다. 결국, 엄마로서의 여정은 나 자신을 찾고, 함께 성장해가는 긴 여행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