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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 아티스트

by 김추억

요즘 우리 딸, 화장을 한다.

집에서만 연습 삼아 화장을 하고 외출 시에는 맨 얼굴로 다닌다.

용돈으로 올리브영에서 야금야금 화장품들을 참 많이도 구매했다.

엄마인 나는 스킨, 로션, 선크림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11살 딸아이는 온갖 종류의 화장품들을 소유하고 있다.

기초 화장품부터 색조 화장, 클렌징 종류와 온갖 기구들까지...

내가 선물 받은 화장품들도 같이 쓰자며 은근슬쩍 자기 화장대에 가져다 놓는다.


화장품 파우치가 무슨 보따리 수준으로 크다. 자동차로 어디 이동해야 할 때 그 파우치를 챙겨 조수석에서 화장을 하는 딸아이.

움직이는 차 안에서도 능숙하게 화장을 한다.

얼굴을 하얗게 떡칠하면서 두드리는데 너무 세게 두드린다.

"야야, 너무 세게 하는 거 아니냐, 살살해라. 셀프 뺨 때리는 거 같다."

"엄마. 안 그래도 어금니 흔들흔들 빠질 것 같아요. 아, 피 맛 난다!"

"진짜? 어떡해!"

"장난이죠. 우리가 같이 산 지가 몇 년인데 장난치는 것도 몰라요? 흐흐 흐흐흐. 엄마, 지금 저 무슨 화장하는지 알아요?"

"무슨 화장하는데?"

"반반 메이크업이요. 얼굴 반쪽만 화장하는 거요."


딸아이는 그냥 자기 얼굴을 도화지 삼아 그림 그리기 중인 것 같았다.

그러다 클렌징 티슈로 자기 얼굴을 지우고 또 다른 메이크업을 시작한다.

"엄마, 이번엔 푸바오 메이크업을 할게요?"

"푸바오?"

"네, 셰딩으로 가능해요."

"셰딩이 뭔데?"

"셰딩은 음... 셰딩은 일단 검은색이랑 갈색밖에는 없는 건데 그런 게 있어요."


잠시 후, 딸아이가 자신의 완성된? 얼굴을 보라며 들이밀었다. ㅎㅎㅎ

진짜 눈이랑 얼굴이 판다였다.

아, 진짜 화장품이 아까웠다.


딸아이는 또 다른 메이크업을 시도했다.

하얀 밀가루 떡칠에 붉은 아이섀도와 시뻘건 입술을 칠해서 일본 가부키나 중극 경극에서나 볼 법한 화장을 한 후에 간드러진 목소리로 뭐라 뭐라 한다.

"아이시떼루~ 아리가또오고자이마시 따. 사요나라~"


딸아이의 화장이 웃기고 무섭고 놀랍다. 정말 창의적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엄마, 나 나중에 메이컵 아티스트 해야 할라나 봐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고, 필터 없는 마음의 소리도 같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메이크업 아티스트 같은 소리 하고 자.빠. 졌.네." ㅎㅎㅎ


웃느라고 말이 겨우 나왔다. 끝에 '자빠졌다'는 소리는 간신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 입에서 그런 거친 소리가 나오다니 아, 원래 내 입이 그렇게까지 험하지는 않은데 딸아이는 나에게 진실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요즘 우리 딸, 화장대 앞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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