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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추억

내가 똑똑한 소리를 하면 나보다 더 똑똑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나는 그 사람 이야기에 나의 부족한 내공이 탄로 날까 봐 혼자 주눅 들어요.
내가 웃긴 이야기를 하면 나보다 더 웃긴 사람이 꼭 있어요. 웃고 싶지 않은데 내가 피식 웃어서 빈정이 상합니다
그런데 당신, 당신은 말이죠. 내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 당신은 나보다 더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그래서 나는 알쏭달쏭한 당신이 좋아져 버렸어요.

오늘은 하루 종일 억수 같은 비가 내려서 순간 장마철인 줄 착각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추억했어요.
내가 당신께 주인비와 머슴비를 아냐고 물어본 적 있었는데 당신은 나의 이 물음을 기억하나요. 밤새 내린 비가 아침에 멈추면 그 비는 머슴들 일 시키기 좋으니 주인비, 낮에 퍼붓는 비는 머슴들이 잠깐 쉴 수 있으니 머슴비라고 내가 설명해 준 거 설마 잊은 건 아니죠.

당신은 주인 비와 머슴 비는 처음 들어봤다면서 갑자기 당신만의 비가 있다고 했어요. 당신의 비를 좋아한다는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당신만의 비는 아침에 장구소리처럼 마구 퍼붓는 비라 했죠. 오늘 내리는 비처럼.
당신은 빗소리로만 잠이 깨는 아침엔 피곤한 기운이나 짜증 나는 마음 하나 없이 일어나게 된다고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깨워주는 아침보다 빗소리로 깬 아침을 더 사랑한다 하셨지요.
당신은 내게 '나만의 비'가 있는지 물었죠. 나는 당신의 이상한 질문 너머로 비에 얽힌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는 왜 당신의 그 이상한 소리를 듣고 말았을까요.
당신이 생각납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요. 아니 그냥 비 같지도 않은 비만 내려도 당신이 생각납니다
나도 그냥 비에 얽힌 나의 전설을 당신께 말할 걸 그랬나 봐요. 그럼 당신도 오늘 같은 빗소리에 나를 떠올렸을까요.

당신은 오늘 장구소리처럼 퍼붓는 빗소리를 듣고 깨어났겠죠. 오늘 아침 당신은 행복했나요. 당신은 오늘 이 빗소리와 함께 어디서 무얼 하시나요.
당신은 알고 보니 이런 날에 내가 당신을 끄적이게 하려는 수작, 당신은 아주 지능적인 사람이었군요.

맑은 날에도 어디선가 풍물패를 만나면 꽹과리와 징과 소고는 다 제쳐두고 내 귀는 이 빗소리와 닮은 장구소리만 따로 빼서 들으려 할 테죠. 풍물패의 신명에도 흥도 나지 않고 나는 당신을 추억하게 생겼어요. 동천에 흐르는 물, 바닷물을 보아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모든 물은 비로 내렸을 거니까요. 내가 떨구는 눈물도 원래는 비였을까요.
병든 몸이 나를 노인의 몸까지 만들어 줄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그리움으로 당신을 끄적일 것만 같아요.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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