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늘 비슷하다.

처음이라 불안한 당신에게

by 디프렙 아카데미


'직업으로서의 디자이너'는 신입 디자이너 윤이서의 성장기를 따라가는 연재소설입니다.

첫 출근 전날 밤의 불안, 낯선 사무실에서의 어색한 인사,

피드백 앞에서의 당황스러움까지 디자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마주하는

일상적인 순간들을 섬세하게 담았습니다.

단순한 성공담이 아닌, 누군가의 ‘처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고민을 들여다보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그리고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들까지 담은 모두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늘 비슷하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출발을 한다.

예쁘고 멋진 걸 좋아한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해 수많은 밤을

디자인 공부와 포트폴리오 제작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막상 취업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기쁨은 잠깐이고, 어쩐지 걱정이 밀려온다.

'내가 과연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어느새 습관처럼 따라붙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작은 원룸 방 안은 고요했다. 핸드폰 화면이 조용히 빛났다.


[윤이서: 나 내일부터 진짜 회사 다닌다...]

[채연: 내일 첫 출근이랬지?? 잘하고 와 이서야]

이서는 이불속에 누워 친구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윤이서: 응ㅠㅠ 근데 너무 떨려서 잠이 안 옴. 회사 가서 뭘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채연: 다 그래ㅋㅋㅋ 우리 언니는 첫날 복사기도 못 써서 울었대]

[윤이서: ㅋㅋㅋ 갑자기 자신감 상승 중ㅋㅋㅋ 복사기 쓰는 건 잘하니까 걱정 없겠네]

[채연: 오케이 ㅋㅋ 복사기로 회사 정복 가자]

이서는 잠시 웃었다. 대화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서는 대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작은 방 안에는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자동차 소리만 간혹 들릴 뿐이었다.

책상 위에는 조금 전까지 펼쳐 놓았던 노트북과 업무에 도움이 될까 사둔 디자인 서적 몇 권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이서는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긴 하루였다. 아침부터 분주히 이것저것 준비를 했지만, 여전히 무언가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첫 출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도 있었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그 감정을 자꾸 뒤덮었다.

3주 전 취업이 확정되었을 땐 그렇게 기뻤는데, 막상 하루 전이 되니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달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 다시 돌아왔다.

늦은 밤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고민하며 수정했던 수많은 디자인들, 밤새워 완성한 포트폴리오가 떠올랐다. 이 질문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그만큼 커졌다.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 핸드폰을 열어 몇 번이고 알람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절대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미 확인한 알람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SNS를 켰다. 디자이너 계정 몇 개를 팔로우해 두었는데,

오늘도 누군가는 미드저니로 뚝딱 만든 컨셉 아트를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첫 프로젝트 론칭 후기를,

누군가는 하루 종일 슬랙으로 싸운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디자이너로 버티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디자이너로 자라고 있었다.

이서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스크롤을 계속 내리다가 한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결국 계속 질문하는 일이에요. 그러니 처음부터 정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짧은 글이었지만, 그 말이 이서의 마음에 가만히 닿았다.

결국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정답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어둠 속에서도 멀리 건물들의 불빛들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출근길이라는 풍경


이튿날 아침,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진 이서는 긴장 탓인지 깊이 잠들지 못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서둘러 집을 나서자 회사 가는 길은 맑고 화창했다.

지하철 안에 들어서자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공기가 느껴졌다.

첫 출근이라는 긴장감 때문인지 모든 게 낯설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이서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처음으로 '출근길'이라는 말을 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예전엔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학교 수업에 늦지 않으려는 마음이었거나,

강의 과제가 밀려 급하게 작업실에 가는 길이었다.

그땐 언제나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숙인 채 마음이 바빴다.

지금은 달랐다. 회사원처럼 옷을 입은 자신이 낯설었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하철에 서 있는 지금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아직은 실감 나지 않지만, 앞으로 매일 이 시간에 같은 칸에 서 있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조금씩 이 변화에 익숙해지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도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문 옆에 서 있는 회사원은 피곤한 표정으로 손잡이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고,

맞은편 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어폰을 끼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이는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바쁘게 뭔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모두가 비슷한 옷차림에 비슷한 표정이었지만, 그 표정들 안에는 각기 다른 삶의 무게가 담겨 있는 듯했다.


이서는 자신과 비슷한 첫 출근을 경험했던 사람들도 이 지하철 안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위로가 되었다. '모두가 나처럼 처음엔 긴장했겠지, 모두가 처음엔 두려웠겠지.'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도 그런 생각이 작은 힘이 되었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질문을 안고 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앞에 도착하자 심장이 다시 조금씩 빨라졌다.

한 달 전, 이서가 이곳에서 면접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면접은 예상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포트폴리오를 설명하는 동안 팀장은 이서의 말을 조용히 듣고, 몇 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디자인 결과물보다는 어떤 생각을 하며 만들었는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더 궁금해하는 듯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뭐였나요?"라는 질문에 이서는 잠시 숨을 고르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용자 테스트에서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아 디자인을 전면 수정했던 경험.

부족했던 점도 숨기지 않았다. 그 대답을 들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희는 완성도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봐요."

그 말이 이서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이서는 처음으로 스스로의 디자인 과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진심은 통했던 것 같았다.


이서는 입구에서 들어가도 되는지 잠시 망설이다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섰다.

한 달 전 면접 때와 똑같은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직원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익숙한 듯 낯선 분위기에 이서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집중한 채 일을 하고 있었고,

조용한 키보드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그때, 지난 면접에서 따뜻한 인상을 주었던 팀장님이 이서를 발견하고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윤이서 님, 드디어 오셨네요. 환영해요.”

"안녕하세요, 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이서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고 밝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는 진짜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생각에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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