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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Mar 24. 2023

황금가지 겨우살이

 더부살이


식물이나 동물이 각자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관찰하면 실로 경이스럽다. 빅뱅으로 인한 우주의 탄생도 경이롭거니와 그 우주가 창출해 낸 생물들의 다양한 생활상은 또 다른 놀라움과 경탄을 자아낸다. 겨우살이는 참나무나 팽나무, 배나무, 밤나무, 느릅나무 등을 숙주로 하는 기생식물이다. 식물이 또 다른 식물에 기생하여 산다는 것 자체로서 흥미있는 일이나 그 살아가는 시스템은 더욱 놀랍다. 


겨우살이는 주로 참나무의 높은 가지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겨우살이의 약효가 암을 극복하거나 고혈압과 협심증, 중풍, 손발의 마비, 등에 효과가 좋다고 하여 남획되어 일반적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인간의 탐욕도 우주가 만들어 낸 성품 중의 하나이니 어찌할 방도가 없으리라.


겨우살이의 열매는 겨울에 먹을 것이 희소해진 새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먹거리다. 새들은 배를 채우고 겨우살이는 새를 이용하여 종족을 보존한다. 겨우살이 열매는 끈적한 액체를 가지고 있다. 새들이 열매를 취하면 새는 미끈거리고 질퍽한 액체를 소화하지 못하고 이내 배설하게 된다. 이때 끈적한 액체에 묻혀 나오는 씨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나뭇가지에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거주지를 넓힌다.


황금가지 겨우살이 


겨우살이의 황금색 가지와 열매는 예로부터 신성하게 여겨졌다. 높은 곳에 홀로 황금색의 가지와 열매를 가지고 있으니 신기하게 여겨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 법하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 제6편에 실린 이야기를 1743년에 윌리엄 피트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러나 저승의 땅, 그 무서운 어둠과 죽음의 영토를 / 끔찍한 지옥의 강을 두 번 건너 / 검은 지옥의 심연을 두 번 헤쳐서 / 그대가 지나가고자 한다면 / 먼저 내 충고를 듣고 나서 안전하게 가도록 하라.

황금가지가 달린 거대한 나무 하나가 / 지옥의 강을 다스리는 조브 신의 왕비에게 바친 /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 자라고 있다. 그 나무줄기에서 꽃핀 황금가지를 잘라내기까지는 / 어떠한 유연한 존재도 그녀의 저승세계를 엿볼 수 없도다." (황금가지, 한겨레출판)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전쟁에서 패한 후 이탈리아로 피신하던 중 그의 아버지가 죽자 무녀에게 그의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자 무녀가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황금가지를 지키는 사람의 책임과 권위를 획득하고자 하면 반드시 나뭇가지 위의 황금가지를 꺽어 황금가지를 수호하고 있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황금가지가 참나무의 겨우살이라고는 알려진 바 없으며 다만 황금가지가 겨우살이로 추정할 뿐이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1854~1941)는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주술과 종교와의 관계를 설명한 그의 역작 '황금가지'를 저술하는 데 영감을 얻은 바 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겨우살이의 신비함을 느껴 볼 수 있다. 실제로 옛 유럽인은 참나무를 숭배하였고 이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를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상징으로 여겨 절대적 존재로 숭배를 했다고 한다. 


동양에서도 겨우살이를 하늘이 내린 영초(靈草)의 작위를 수여했다. 겨우살이는 겨울의 모든 식물들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스스로 광합성을 하며 묘한 황금가지색과 옥색의 둥근 열매를 달고 참나무 가지위에 사뿐히 올라있다. 바라보노라면 무녀의 주술에 걸린듯한 느낌이다.

참나무 위의 겨우살이. 빛을 흠뻑 받아 황금가지에 황금열매를 연상케 한다 (광릉숲의 겨우살이)


겨우살이도 꽃을 피울까 


세상에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 외에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은 없다. 느티나무의 꽃을 본 일이 있는가? 커다란 느티나무도 아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꽃을 피운다. 다만,  나무의 덩치에 비해 꽃이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들판의 질경이도 작고 하얀 꽃을 피운다. 해마다 3월 이면 겨우살이도 담백하고 소박한 노란 꽃을 피운다. 역시 황금색에 가까운 색이다. 겨우살이의 모습과 생활사도 기이하고 놀랍지만 가지에서 피어나는 노란 황금색의 꽃을 바라보는 것은 가슴 떨리는 환희다.

겨우살이 꽃이 참나무가지에 노란 황금색 꽃과 잎을 내고 있다 (광릉 숲)



옛 선비들도 겨우살이를 노래했다 


이러한 기묘한 씨앗의 번식을 우리 조상들도 미리부터 놓치지 않았다. 고려 말 근재 안축의 시가 경북 울진 월송정에 걸려있다. 시의 내용 중에 겨우살이 열매의 아교질에 겨우살이가 서로 얽혀 있음을 묘사했다.


옛사람 간곳없고 / 삼천은 의구하되 / 천 년 전 옛 자취 / 송정 오직 남았구나 / 겨우살이 다정한 듯 / 서로 엉켜 아니 풀고


겨우살이의 씨에는 약간의 설사를 일으키는 효소가 있어 새들이 한번 열매를 취한 후에는 주변의 물가에서 물을 먹어 다시 배변을 하게끔 유도한다고 한다.  자연생태계의 조화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끈끈함  


<<시경>> <소아> 頍弁(규번)에서는 겨우살이와 같은 끈끈한 가족의 풍경을 노래했다.


뾰족한 가죽 관을 / 무엇하러 썼나? / 술도 맛이 있고 / 안주도 철에 맞으니 / 이 사람들이 어찌 남남이랴 /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네 / 겨우살이와 새삼이 / 소나무 위에 뻗어 있네 / 군자들을 만나기 전엔 / 마음의 시름으로 걱정하더니 / 군자들을 만나보고는 / 내 마음 좋아지네 

(시명다식) *규번:남루한 고깔


집을 나간 형제 중 하나가 남루한 고깔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니 온 가족이 기뻐하며 함께 즐겁게 노니는 정다운 풍경을 그린 시다. 겨우살이의 열매와 가지가 한 곳에 뭉쳐서 나뭇가지 위에 피어나는 모습은 인간세상에서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모습과도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것도 아교질 같은 끈끈한 액체가 흐르는 듯한 돈독한 형제애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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