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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Mar 30. 2023

연모지정(戀慕之情)의 매화


초명월(梅梢明月)

*매화 가지 끝의 밝은 달


또 2월이라, 매화 필 때 기다려 본다. 사람마다 매화를 보는 눈이 꽤 다르겠다. 매화는 과거시험의 시제인 양 스스로  시 한번 읊어 보라 조르는 듯하다. 나는 밤에 피어 있는 매화를 좋아한다. 달이라도 매화 가지에 걸쳐주면 금상첨화겠다. 보름달은 밝아서 좋고 초승달이면 미인의 눈썹인가 좋을 것이다.  매화에 밤과 낮이 따로 있으랴만 밤하늘에 달 빛 받은 매화는 시리도록 희어 보이고 자태는 더욱 고매(高邁)해 보인다. 

낮에는 매화에 이끌리는 곤충을 볼 수 있다. 박각시가 매화를 찾아 꿀을 빨고 있다(좌), 달 빛 애래 매화(우)



 매화지존 


5개의 서럽도록 얇은 꽃잎을 가진 매화는 문학적, 예술적, 정서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지지 않는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매화에 지조, 절개, 충절, 군자, 선비정신 등의 후한 점수를 매겼다. 화초에 관심이 많았던 조선초기 문신 강희안은 그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매화를 1품의 자리에 올려놓았고 뒤를 이어 조선 영조 때의 문신 유박은 그의 식물에 관한 저서 화암수록(花菴隨錄)에서 역시 매화를 1등의 자리에 올렸다. 추운 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의 고매함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일찍이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 967∼1028)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퇴계(15011570)는 매화를 매형으로 불렀다고 하니 매화를 사람과 같이 대우한 것이다. 매화는 수 없이 많은 시그림, 심지어 도자기나 문방구, 문갑에까지 생활의 곳곳에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설한(雪寒)을 지나도 버티고 서 있는 대나무의 오만함을 질책하듯 자칫 매화가 교만에 빠지지 않을까 두렵다.


모든 매화꽃은 같은 광주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지역적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피어난다


연모지정(戀慕之情)

*이성을 사랑하여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


시경의 매화는 매화의 화려한 수식 타이틀을 인용하지 않았다. 매화가 각종 타이틀을 거머 쥔 시기는 송대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4군자의 용어도 명나라 이후에 생긴 것을 보면 매화의 본격적인 데뷰는 때를 더 기다려야 했다.


<<시경>> <소남> 摽有梅(표유매)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매실을 바라보며 님을 기다리는 순박하고 애틋한 마음을 노래한 시다. 시에서는 꽃인 매화가 아닌 열매인 매실을 묘사하였다. 당시 백성들의 사용 용도에 있어서는 매화보다는 매실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매화는 당대를 지나 송대에 활발하게 시의 소재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매실이 떨어지네요 / 일곱 개만 남았네요 / 나를 찾는 님이시여 / 좋은 날 잡아 오세요

매실이 떨어지네요 / 세 개만 남았습니다 / 나를 찾는 님이시여 / 오늘 바로 오세요

매실이 떨어지네요 / 광주리에 담고 있네요 / 나를 찾는 님이시여 / 어서어서 말해 줘요

*표유매:매실을 따고 있네요


이 시는 처녀의 님 향한 간절함에 측은지심을 느끼게 한다. 처음부터 사귀다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외로움에 못 이겨 누구라도 나에게 달려 올 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걸까? 청춘의 시절, 아직도 사랑하는 이 없어 외로움에 낙담할 때쯤, 활짝 핀 매화꽃에 '아이코' 하고 비명을 질렀던 경험이 있으리라. 달빛 아래 빛나는 매화의 자태 오히려 외로움 증폭되어 매실이 열리기 전 까지는 반드시 사랑하는 이를 찾아보리라 다짐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덧 꽃지고 매실마저 다 익어가는데 나의 님은 소식 없다. 매실이 익어 갈수록 나의 속은 타들어 간다.


고립무의(孤立無依)

*고립되어 의지할 데가 없음


<<시경>> <소아> 사월(四月)에서는 매화나무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비록 매화의 자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는 이상에야 나무만 보고 아름답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에는 아름다운 초목이 있어 / 밤나무와 매화나무 라네 / 변하여 백성들을 해치니 / 그 잘못을 모른다네


밤나무와 매화나무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지만 현실은 비참하다. 조상 탓을 할 것인가, 왕의 실정을 탓할 것인가. 비참한 나의 현실에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시인은 나의 슬픈 현실을 호소하기 위해 가장 고매한 매화나무와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


매화유람


"내년 봄엔 매화 유람이나 해 볼까?" 아내에게 제의하니 "그래 볼까" 하고 선뜻 긍정답변이 돌아온다. 매화를 쓰다 보니 여러 고장의 풍수와 색깔에 맞는 격조 높은 매화라도 한번 감상해 보고 싶은 것이다. 때마침 월간조선 잡지에 매화로 물든 페이지가 있어 당장 여정을 짜본다.


퇴계선생과 두향의 이야기가 전하는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를 시작으로 양산 통도사 자장매(慈贓梅)는 고사찰의 분위기와 어울릴 것이다. 전남 구례 화엄사의 백매(梅)는 유서 깊은 화엄사의 경내와 빅매치 일 것이고, 백설이 내린 듯 눈부시게 흰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은 예전부터 고대하던 곳이다. 전남 승주 선암사의 선암매( 仙巖梅)에 취해 본 후 호남 5매의 하나인 전남 장성의 고불매(古佛梅)로 향할 것이다. 아아, 대저 매화는 뭇사람들이 사랑하여 곳곳에 심어져 있으나 심산유곡의 사찰과 어울려 피는 매화의 풍광에 어찌 미칠쏜가. 매화 피는 3월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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