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운경 Jun 25. 2023

보릿고개의 구원투수 보리

  

보릿고개


릿고개.  굶주리고 곤궁했던 시기를 나타내는 말로써 보리 하면 금방 떠오르는 말이다. 춘궁기. 이는 곧 보릿고개의 시기와 일치한다. 옛말에 "보릿고개 때는 딸네 집에도 가지 마라"라고 했다. 굶주림의 고개는 그 어느 높은 봉우리보다  넘기 힘든 고개였다. 병들어도 배는 채울 수 있으나 굶주리면 곧 아사요 병사로 이어지니 보릿고개는 실로 디기  어려운 험한 고개였던 것이다.  선시대의 시인 달(1539-1612)의 농가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시는 눈시울을 적신다.


보릿고개


농가의 젊은 아낙 먹거리가 없어서 / 빗속에 보리 베어 풀섶 사이 돌아온다.

생나무 습기 먹어 연기조차 일지 않고 / 문에 들자 새끼들은 옷깃 끌며 우는구나.

(우리 한시삼백수. 정민 평역)


빗속이라도 뚫고 나가 젖은 보리이삭을 베어온들 불피우기도 힘든 상황에 아이들은 보챈다. 이달이 시를 읊은 전이나 이후에도 기근은 언제나 웅크리고 있다가 민중을 위협했다. 경신대기근(1670-1671) 때는 무려 100만 명가량이 아사 및 병사했다고 한다. 이 때는 차라리 임진왜란 때가 더 낫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 실로 굶주림은 무서운 것이다.


리의 가난하고 고단한 서민의  삶의 상징은  많은 작가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승원의 자전적 소설 <보리 닷  되>의 한 절에보리의 질감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쌀 한 톨 넣지 않고 지은 밥은 검누르렇고, 왕모래알처럼 거칠었다. 반찬이 떨어졌으므로 된장 한 점씩을 찍어 넣고 거친 꽁보리밥을 먹었다". 


보리가 언제나 보릿고개에서 민중의 굶주림을 해결해 준다고 하는 보장도 없었다. 가뭄은 언제나 기습이라도 하려는 듯 웅크려 도사리고 있어 보리라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서야 이삭을 팰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심훈의 <상록수>에 비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노인의 푸념 섞인 독백은 서민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런 제에기, 보리 싹이 연골에 말라 배틀어지니 올 여름엔 냉수만 마시고 산담메."




 위정자에게 고함 


<<시경>> <위풍> 석서(碩鼠)는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핍박한 백성들의 삶을 노래했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나의 보리 먹지 마라 / 삼 년을 섬겼어도 나의 공덕 몰라주네 / 내 이제 너를 떠나 즐거운 나라로 떠나리 / 즐겁고 즐거운 나라에서 이제 바르게 살 곳을 얻었네*석서: 큰 쥐

 위정자에게 고함 


<<시경>> <위풍> 석서(碩鼠)는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핍박한 백성들의 삶을 노래했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나의 보리 먹지 마라 / 삼 년을 섬겼어도 나의 공덕 몰라주네 / 내 이제 너를 떠나 즐거운 나라로 떠나리 / 즐겁고 즐거운 나라에서 이제 바르게 살 곳을 얻었네

*석서: 큰 쥐


여기서 쥐는 부패하고 무도한 관리를 말한다. 보리밥 끼니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관리들은 과도한 세금의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수탈을 일삼는 탐관오리들을 큰 쥐에 비유한 것이 지극히 호쾌하면서도 통쾌하다. 옛 선비들도 이 시를 읽으면서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될지 고민하고 마음을 다스렸으리라. 사실 오늘날의 힘 꽤나 쓴다는 권력자들과 나라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시경을 열심히 읽어 쿤 쥐의 수치스럼움을 알고 바른 위민정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황금벌판 


보리가 언제나 배고픔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푸른 들녘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보리 이삭의 물결은 계절에 따라 색깔을 바꾸며 들녘을 물들인다. 수필가 한흑구는 그의 작품 <보리>에서 "들에도 언덕 위에도 산등성이에도 봄의 춤이 벌어진다. 푸르른 생명의 춤, 샛말간 봄의 춤이 흘러넘친다"라며 생명력 넘치는 보리를 예찬했다.


<<시경>> <용풍> 상중(桑中)의 한 구절은 보리밭을 배경으로 남녀 간의 은밀한 교류를 노래한 시다.


보리를 베러 가네 매 마을 북쪽까지 / 그리운 이 누구일까 익씨네 맏딸이네

상중에서 약속하고 상궁에서 맞아주네 / 기수의 강가에서 배웅까지 받는다네


이 시는 위(衛)나라의 땅에서 벌어지는 장면으로 위나라의 풍속은 음란하여 남녀 사이의 욕정을 노래하고 인심과 풍속을 헤친다 하여 이것을 경계하곤 했다. 그러나 시의 배경을 차치하고 순수하게 시를 감상하는 것만으로 족함을 안다면 보리가 주는 서정적 감상과 멋진 들판을 상상할 수 있으리라.



 파수꾼 보리까락


보리가 색을 바꾸어 익어가는 오월이면 보리까락으로 무장한 보리의 위용은 절정에 달한다. 보리까락은 보리의 낟알 겉껍질에 붙은 수염  또는 동강을 말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보리까락은 보리의 호위무사임을 자처하는 양 수려하고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보리의 낟알을 감싸고 수호한다. 보리까락의 다양한 역할은 경이롭다. 날카로운 창과 같은 까락은 보리의 낟알을 동물들의 먹이로부터 보호해 준다. 보리까락은 보리가 땅에 떨어져 씨앗의 기능을 할 때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보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보리의 씨앗이 땅에 제대로 파고들 수 있도록 도움도 준다. 이뿐만 아니다. 보리까락은 광합성이 가능하여 보리에 필요한 영양까지 제공한다. 보리까락은 보리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파수꾼이다.


자칫 보리가 가난과 배고픔을 몰고 온다라면 큰 오해다. 보리는 오히려 민중의 배고픈 허기를 달래고 위로해 주는 고마운 식물이다.

보리가 수놓는 오월의 황금벌판은 우리의 색이요, 우리 강산의 색깔이다.


보리까락은 보리의 낟알을 보호하고 광합성을 통한 영양을 제공하며 씨가 땅에 잘 자리 잡도록 도움도 준다

.










































   

 


   



  








   





 


 


 


 




   


  


  


   


   


   


   




   


 


  




 


 


 


 


  


  




   


 


 




   


  







  








 






 


 



































  





  


  





 


  


 


 








  




  




  




  




  




  




  




  




  




  




  




  




  




















  




  




  




  




  







  













  




  




  




  




  




  




















  




  




  




  




  




  




  




  




 

















  




 




  




  









  
































































  







 




  




  







 








이전 24화 슬픈 이야기를 품은 도꼬마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