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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Mar 27. 2023

다정다감 개암나무

아쉬움 


나는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에서 태어났으니 사실 숲 속의 환경과 생태를 친근하게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끔 아이들과 주변의 농대산(지금의 강원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곳)에 놀러 가 달달한 아까시 꽃을 가지채 입에 넣고 훑어 먹거나 진달래 꽃으로 점심을 대신하곤 하였다. 산속에서의 먹거리를 찾으려고 하면 지극히 토속적이고 고향냄새 물씬 나는 개암나무만 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순이 다 되어서야 개암나무를 알아보고 담백하고 고소한 열매의 맛도 알게 되었다.  늦었지만 개암나무 열매 하나 깨물어 보지 못한 아쉬움의 회한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다행이 아닐까? 결국 「 어린 시절 개암나무 추억 없음 」 의 아쉬움이라도 토로해 보고 싶은 것이다. 


치어리더     


개암나무는 자작나무과의 식물이다. 자작나무의 수꽃과 암꽃이 방향을 달리 하여 따로 피듯이 개암나무의 암꽃은 수꽃과는 다른 위치에  빨간 꽃술을 내밀어 피어난다. 수꽃의 길이에 비하여 아주 작게 피어나는 암꽃을 어느 시인이 "봄의 치어리더들은 꽃술을 흔든다"라고 묘사했다. 무릎을 치는 표현이다. 개암나무는 이제 봄이 왔으니 기쁨을 만끽하고 또 한해를 열정적으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암꽃이 수꽃과 위치를 달리하여 피는 이유는 자가수정을 피하여 보다 우월한 종자를 얻기 위한 식물의 전략이다. 개암나무의 암꽃은 작정하고 보려고 하지 않는 이상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도 개암나무는 높이 자란다고 해도 2~4미터 정도이고 대부분은 눈높이에서 관찰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볼 수 있다. 식물의 작은 꽃은 재미에서 흥미로, 흥미에서 신비로 그리고 신비에서 경이로 발전한다. 경이는 곧 힐링이다. 


개암나무의 꽃(좌) , 총포가 보호하고 있는 개암나무 열매(우)

개암나무 있는 서쪽나라Ⅰ 


<<시경>> <패풍> 간혜(簡兮)는 견디기 힘든 현실에서 개암나무가 있는 이상향의 서쪽나라를 생각나는 시다. 개암나무 있는 곳은 평화롭고 아늑한 곳이리라. 


씩씩한 저 무사 춤을 추려하네 / 해는 솟아 중천인데 맨 앞줄 윗자리에 섰네 / 장대한 저 대장부 궁정에서  춤을 추네 / 범같이 강력하고 실 잡듯 고삐 잡네 / 왼손엔 피리 잡고 오른손엔 꿩 깃 잡네 / 붉은 물 드린 얼굴 께서 술잔을 내리셨네 / 산에는 개암나무 늪에는 감초 풀 / 누구를 생각하나 서쪽 나라 미인 인가 / 저 미인이로세 서쪽 나라 사람일세 

*간혜:성대하네


시에서는 무사가 춤을 추고 피리 잡는 모습으로 보아 매우 흥겨운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더 큰일을 담당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겨우 춤이나 추며 피리나 챙기고 있는 본인이 모습을 한탄하고 있는 장면이다. 서쪽나라 미인을 바라본다는 것은 옛날의 영화로운 시절을 그리워한다거나 자기를 알아줄 만한 사람이 개암나무가 있는 평화롭고 행복한 서쪽나라에 있으리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맛난 열매를 가진 개암나무와 감초풀은 시인이 상상하는 평화롭고 아늑한 세상이다. 개암나무의 열매는 두장의 총포라고 하는 작고 넓은 잎사귀가 열매를 보호하듯 열매를 품고 있다. 씩씩한 무사는 아마도 포근한 총포에 안겨있는 개암나무가 있는 평화로운 서쪽의 세상을 꿈꾸고 있으리라.


개암나무가 펼쳐지는 평화로운 풍경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 김창협의 시문집인 농암집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단양협곡 이와 같은 곳 그 어디뇨 / 백성 풍속 처음과 다름없네 / 강 위의 어부는 한가로이 고기 잡고 / 골짜기 인가에는 닭과 개도 드물다 / 개암나무 숲에서 도끼로 나무하고 / 파릇한 봄풀을 일군 밭에서 베어내네 / 중류에서 눈길 멈춰 노를 젓기 힘드네 / 이다음 그대 함께 여기 와서 집 지으리 


몇 개의 속담


서양에서도 개암나무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속담이 있다. 개암나무는 안전한 산울타리용 나뭇가지로 사용되었다. 고대로마에서는 휴전과 평화협정의 중재자는 그의 손에 개암나뭇가지를 들어 선의를 표시하였다. 신데렐라는 어머니의 무덤에 어린 개암나뭇가지를 심어 재앙을 물리치고 행운을 빌었다. 개암나무 가지를 들면 뱀을 물리친다고 한다. 낭창낭창한 개암나무 가지의 매서운 회초리가 뱀을 쫓을 만하다. 모두 평화와 액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조금 외설적이고 우스갯소리일지 모르나 개암나무에는 재미있는 서양속담도 꽤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나이팅게일은 전나무에서 울지 않고 개암나무 덤불에서 지저귀네>, <개암나무 덤불로 가다>, <개암나무 많은 곳에 수많은 아비 없는 자식>, <개암나무에서 낳아 온 녀석> (나무 신화:나무로 본 유럽 민속의 기원, 도리스 라이데르트)


우리의 뽕나무 밭 역할을 서양에서는 우거진 개암나무 숲이 떠맡은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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