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신목(神木) Ⅰ
뽕나무는 귀로 듣는 횟수에 비하여 좀처럼 눈에 잘 안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보고도 몰랐을 가능성이 더 크다.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이라면 뽕나무 아래에 하루를 누워 있어도 알지 못하리라.
뽕나무는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예로부터 매우 중요시 여긴 나무이다. 태조실록에 농업과 양잠은 의식(衣食)의 근원이고 백성의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라고 하여 뽕나무 심는 것을 독려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뽕나무를 심어 왕비가 직접 누에를 쳐 비단을 짜는 등 양잠을 백성들에게 적극 권장했다.
누에는 뽕나무를 식엽상대로 하여 오랜 세월 동안 뽕잎을 섭식해 왔고 아득한 시절 중국황제의 비 서릉 씨에 의해 우연히 비단을 뽑아내기 시작한 이래 인류문화에 지대한 영향과 공헌을 한 곤충이다. 그래서 누에는 하늘에서 내린 벌레라는 뜻의 천충(天蟲)이라는 작호를 받았고 뽕나무도 더불어 신목(神木)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으니 가히 뽕나무의 내력을 짐작케 한다.
Ⅰ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다 Ⅰ
뽕나무는 중국에서도 매우 중요한 나무였다. 시경에 나오는 식물 중에서 아마도 뽕나무보다 많이 언급되는 식물도 드물다. 우리나라도 뽕나무에 얽힌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옛날 중국에서도 어지간히 뽕나무밭에서 남녀가 밀회를 즐겼나 보다.
<<시경>> <용풍> 桑中(상중)은 뽕나무밭을 배경으로 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다.
새삼을 캐러 간다 매 마을 동쪽으로 / 그 누구를 사모할까 강씨네 맏딸이라오
상중에서 약속하고 상궁에서 맞아주네 /기수의 강가에서 배웅까지 받는다네
*상중: 뽕나무가 많은 마을의 이름
일찍이 위나라의 음악은 亡國之音(망국지음)이라고 하는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라고 하였다. 시가나 음악이 음란하고 불경하다 하여 붙여진 불명예인데 桑中(상중)도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영화 「뽕」에서 보듯 뽕나무는 남녀 간의 애정행각이 벌어지는 장소로서 각인되어 있다. 우리말 '님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말이 3천 년 전의 시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을 보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남녀 간의 애정 행각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시경>> <소아> 隰桑(습상) 도 뽕나무를 배경으로 하는 연애시라고 할 수 있다. 벌판의 뽕나무밭에서 만나는 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화끈거리고 즐겁기 한량없다.
저 벌판의 뽕나무 아름다워라 / 그 잎새도 푸르기만 하구나 / 우리 님을 이렇게 만났으니 /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습상:벌판의 뽕나무
사모하는 님을 기다리는 것은 군주를 기다리는 신하일 수도 있겠고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는 여인일 수도 있겠다. 이루어진 사랑이나 다 못 이루어진 사랑, 실패한 사랑이건 성공한 사랑이건 사랑은 마음을 조아리고 두근거리게 하는 최고의 묘약이다.
<<시경>> <진풍> 車隣(거린)에서도 뽕나무 언덕에서 님을 만나 지금 즐기지 아니면 언제 즐기리오 하니 역시 배경은 뽕나무다.
언덕에는 뽕나무 습지엔 버드나무 / 우리 님을 만났으니 함께 앉아 젓대 부네 / 지금 즐기지 않을 쏘냐 한 번 가면 그만일 것을
*거린:수레소리
이밖에도 <<시경>> <빈풍> 七月의 한 구절은 뽕잎을 따다 멋진 님을 만나 시집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뽕잎을 따러 가고 봄날은 길고 기네 / 쑥을 수북이 캐노라면 여인의 마음은 타들어가 / 멋있는 공자님에게 시집가고 싶어라
Ⅰ부모님을 생각하다 Ⅰ
그런데 뽕나무는 비단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래나무와 함께 부모님을 공경하는 뜻을 가진 대표적인 나무다. 桑梓(상재:뽕나무 상, 가래나무 재)라는 말은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고향이나 고향에 계신 연로한 어버이를 뜻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집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로 심어 누에를 치고 가구도 만들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심었고 늘 가꾸어 온 것이므로 부모님을 생각하고 공경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시경>> <소아> 小弁(소반)의 한 구절은 뽕나무를 볼 때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노래했다.
가래나무도 뽕나무도 보살피고 공경하니 / 아버님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 마음에 그리는 어머님이네
소반: 갈가마귀
뽕나무는 암수한그루 또는 암수딴그루로서 암수가 서로 다른 나무이다. 꽃 또한 수꽃과 암꽃의 피는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 뽕나무밭에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듯 뽕나무도 암수가 따로 있다고 하니 우연의 일치일까. 뽕나무가 부모님을 생각하게 한다고 하니 길가의 뽕나무를 보고 부모님도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