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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Jul 27. 2022

캐나다 숲 속 달리기

거북 맘의 미국 여행기 7화


"나는 당최 이해가 안 간다."

"아니, 내가 내 발로 뛰는데 돈은 왜 내야 한다냐?"


러닝화 끈을 조여매고 나갈 채비를 하는 내게

김여사가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하신다.


마라톤 하는 거북 맘은

어딜 가든지 일단은 달려줘야 뭔가 마음이 편해지는

일종의 강박증 비스름한 게 있어서

이번 여행을 오기 전,

미리 나이아가라 근처의 로컬 러닝 클럽을 검색해서 회원 가입을 한 후

내가 머무는 시기에 있을 마라톤 대회나

러닝 이벤트가 있는지 정보를 구했다.


다행히도 마침 나이아가라를 떠나기 하루 전에,

하프 마라톤 대회와 7킬로 트레일 러닝 이벤트가 있었다.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까 고민하다가

아직 여행 일정이 제법 남아있는 터라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서

캐나다 숲 속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7킬로 트레일 러닝 이벤트에 참가 신청을 했다.


당연히 대회 참가비가 있으니 결재를 했고

김여사로서는

안 그래도 힘들게 뛰어야 하는데

뭔 돈까지 내면서 달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셨던 모양이다.


"7킬로 정도는 나한테 그냥 껌이니까

후딱 가서 얼른 뛰고 올 테니, 엄마는 그 사이에 뒹굴뒹굴 좀 쉬고 계셔."


전날, 미리 대회가 열릴 장소를

구글 맵으로 검색해서 사전답사를 다녀온지라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침대에서 여유롭 아침잠을 주무시는 김여사를 뒤로하고

느긋하게 차에 시동을 걸고 음악을 들으며 룰루랄라 숙소를 출발했다.


대회가 열릴 장소는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가 아니라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 St. Catharines의

The Twelve Trail이라는,

시내에서 한참 외곽으로 빠져서 깊이 들어가야만 하는

울창한 숲 속에 위치한 곳이었다.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하프 마라톤은 벌써 한참 전에 시작됐고

7킬로 트레일 러닝 출발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른 아침 시간인지라

아침 공기가 무척이나 쌀쌀하고 차가웠다.

아마 깊은 숲 속이라 체감 온도가 더 낮았으리라.


텐트 안에는 운영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등록을 확인하고 대회 티셔츠와 기념품들을 나눠주고 있었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참가자들도 제법 많이 보였다.


이른 아침 공기가 너무 차갑고 쌀쌀한 나머지

온통 닭살이 돋은 팔과 어깨를 바들바들 떨면서

내 Bib number와 기념품을 챙긴 후

차라리 어서 빨리 러닝이 시작되길 바라며

스트레칭과 함께 계속 움직이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원래 낯선 사람들과는 선뜻 쉽게 말을 트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이 사람들을 또 언제 볼 거라고 굳이 내외를 하겠나' 싶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웃으며 인사도 하고

사실 나는 관광객인데, 순전히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일부러 이곳까지 찾은 거라고 소개를 했더니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음 띈 얼굴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야,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관광하러 와서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한 거니?" 라며 신기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회가 열리는 곳은

관광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이아가라 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인 데다가

러닝에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국제대회도 아닌, 이런 소소한 이벤트가 있다는 걸

관광객이 알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김여사에게 여행의 주목적 중 하나가 쇼핑이듯

내게 있어 여행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바로 관광지에서의 러닝인 것이니

누가 뭐래도 내겐 큰 의미가 있는 중요한 스케줄인 것이다.



주최 측 관계자인 듯한 사람의 인사말과 함께

오늘 달려야 할 코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스타트 건이 발사됐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함께 출발하면서

드디어 7킬로 미터의 트레일 러닝이 시작된 것이다.

달리다 보니, 중간중간 다음 코스를 알려주는 표식들이 있었고

애매한 구간에는 안내 요원인듯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이쪽저쪽으로 가라고 방향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해도 들지 않는 깊고 어두운 숲 속을 지나

울퉁불퉁하고 좁은 길 위에 크고 작은 나무뿌리들이 뒤엉켜 있고

작은 돌멩이와 바위들이 곳곳에 깔려있는

제법 험하고 가파른 코스를 달려야 하는 트레일 러닝은

큰 굴곡이나 변화가 거의 없는 도로나 평지를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래도 섬이라는 사이판의 특성상

울창한 숲에서 달려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작은 섬 구석의 아줌마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나름대로 혼자서

틈틈이 가파르고 경사진 언덕을 꾸준히 달리며 훈련하고

종종 20킬로 이상의 긴 거리를 달리면서

기초 체력과 지구력을 길러온 덕분에

그다지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재미나게 달렸던 것 같다.

비록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러닝을 사랑하는, 같은 마음과 목적으로 모여

그 이른 시간에 함께 숲 속을 달리고

서로의 가쁜 호흡과 땀방울을 느끼면서

진심으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던 그 순간들이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울창한 나무들이 서로 몸을 기댄 채 빽빽하게 들어차

상쾌한 피톤치드를 마구 내뿜는

캐나다의 깊은 숲 속을 마구마구 내달리던 순간들이

내겐 너무도 감동적이었고 행복했으며 꿈만 같아서

아직도 수시로 불쑥불쑥, 그때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을 나만의 추억.


비교적 일찌감치 선두권으로 피니시 라인에 들어온 덕분에

다른 참가자들이 헉헉 거리며 도착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박수 쳐주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각종 음료와 과일, 스낵, 심지어는 생맥주 까지...

맑고 파란 캐나다의 하늘 아래서 여러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모닝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정말 행복하고 짜릿했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되라고 행운을 빌어주던 사람들과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

상쾌한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픽업트럭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온다.

바퀴의 압력이 낮아졌다는 신호인데

사실, 그 전날부터 그런 경고가 떠서

숙소에서 가까운 주유소에 들러 이미 해결을 한 상황이었다.


간밤에 토론토에 있는 남편과 통화를 하니

아마, 일단은 에어를 채웠어도 또다시 경고등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조심해서 살살 운전하고 다니라는 주의를 듣기도 했었다.


아직 숙소까지 가려면 제법 거리가 많이 남기도 했고

엄마와의 남은 일정도 있어서 좀 더 렌터카를 끌고 다녀야 하는데

어제에 이어 다시 깜빡이는 경고등을 무시하고 그대로 다니기엔

뭔가 개운치 않고 불안해서

일단 근처에 있는 가장 큰 주유소를 찾아 차를 세웠다.


다행히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에어펌프는 있었지만 유료였고

불행히도 동전 하나 없이 달랑 카드 한 장만 가져온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성이고 있었다.


주유소 내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 봐야 파트타임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원도

딱히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냥 살살 운전하고 가 볼까.'

근데 그러기엔 한쪽 바퀴의 압력이 너무 낮아져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용기백배해서

한쪽 구석에서 주유를 하고 있던 젊은 청년에게 무작정 다가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하고 자신의 차를 내 차 옆에 주차하고는

같이 온 친구와 함께 차바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각종 장비를 꺼내는데

와우~무슨 출장 서비스 온 정비소 직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에어를 넣어도

한쪽 바퀴의 압이 정상 수준으로 올라가질 않자

캐내디언 청년들이 다시 한번 꼼꼼히 바퀴를 들여다본다.

이런...

알고 보니 엄청 큰 대못이 떡하니 박혀있었던 것이다.


놀랍고 희한하게도 모든 장비들을 다 갖추고 다니는 그 청년들은

낑낑 거리며 힘을 써서 바퀴에 박혀있던 대못도 뽑아주고

심지어는 못을 뽑아낸 자리에 땜질까지 해 준 후 다시 에어를 채워주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그 청년들 덕분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세상에 없을 친절함을 캐나다에서 경험하게 됐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생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 수 있었을까, 나였다면?


고작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머물면서

캐나다를, 그리고 캐나다 사람들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의 넉넉함과 여유로움,

낯선 사람에 대해 열린 마음과 함께 뭐든지 도와주려는 친절함이

대부분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참 착하고 친절했던 캐내디언 총각들.

감사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상자로 대신하긴 했지만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이자

언젠가는 꼭 다시 캐나다를 찾으리라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바로 그다음 날이라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웠던

캐나다에서의 아침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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