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라토너 거북 맘 Jul 26. 2022

엄마 평생에 남을 추억이란...

거북 맘의 미국 여행기 6화


단언컨대

대부분의 경우, 나이아가라에서 길어야 하루나 이틀 정도 묵으면서

남들 하는 거 대강 경험하고 한 바퀴 둘러보고 가는 관광객들은 많겠지만

엄마와 나처럼

마치 현지 주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느긋하고 여유롭게

나이아가라를 오롯이 느끼고 즐기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우리 1945년 광복둥이 김여사가 오래전부터 그렇게 가보고 싶어 했던 나이아가라.

이번에 아주 제대로 본전을 뽑다 못해

작정하고 나이아가라를 심층 분석하고 해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렇게 오랜 시간, 충분히 즐기고 느꼈다고 자부한다.


White Water Walk라는

급류 지점을 감상하는 포인트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인상 깊고 대단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채 3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나이아가라 주변의 관광 명소들 중 하나인 이곳은,

나이아가라 폴에서 떨어진 어마어마한 폭포수가

엄청난 속도로 급류를 이루며 흘러내려가는 길고 험한 물길 바로 옆을

나무로 만들어진 보드워크를 따라 걸으며

자연의 놀랍고 위대한 힘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곳들 중 하나이다.


엄청난 물의 양과 속도로 인해

급류가 그냥 흘러내려가는 수준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큰 물고기 떼가 이동하는 것처럼 펄떡거리기도 하고

갑자기 용솟음치듯 튀어 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흐르는 걸까...

궁금해서 보드워크 곳곳에 있는 설명들을 읽어보니

지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저와 최고 속도가 시속 40~100킬로 정도라고 한다.

급류가, 달리는 자동차보다 빠르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두 모녀는 자연의 엄청나고 위대한 힘 앞에서

그저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취해

감탄하며 급류를 감상할 뿐이었다.



빨간 메이플 나뭇잎이 국가의 상징인 캐나다.

그래서인지 메이플 시럽뿐만 아니라

쿠키며 초콜릿, 마시는 차에도 온통 메이플 향이 들어가 있다.

근처에서 제법 유명한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진한 메이플 시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우리 김여사는 다행히도 해외여행을 할 때

김치나 국, 찌개, 고추장 류가 없어도

햄버거도 잘 잡숫고 아메리칸 스타일 푸드도 거부감 없이 드시는 편이다.


특히나 숙소 바로 옆 음식점의 수제 햄버거는

김여사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아서

극찬을 하시며 무려 두 번씩이나 드시고

심지어는 나에게도 먹어 보기를 강요하셨다.

햄버거 안에 들어있는 소고기 패티가 너무 부드럽고 제대로라며

아주 야무지게 다 드시던 김여사.


나이아가라 폭포 전체를 내려다보며 감상하기에는

스카이론 타워만한 곳이 없었다.

236미터 높이라는 스카이론 타워의 전망대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이아가라 폴 주변은 물론, 멀리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국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며

정말 제대로 다 둘러보고 가는 것 같다고 만족해하시는 엄마.

엄마가 좋아하시니, 나도 덩달아 뿌듯하고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우리 유람선 한번 더 탈까?"

"이번엔 빨간 우비 입고... 한번 더 오케이?"


배시시 웃으시며 아무 말씀이 없으신 우리 김여사.

좋다는 뜻이다.


어지간하면 우리 김여사가

"야야, 한번 타 봤으면 됐지, 뭘 그걸 한번 더 하냐."

"됐다 됐어, 다리도 아프고 귀찮다."

이런 반응이었을 텐데...

정말 유람선 체험이 너무도 맘에 들고 좋으셨었나 보다.


결국 우리는 며칠 사이에

파란 우비 입고 한번, 빨간 우비 입고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유람선 체험을 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폭포수 싸대기를 두 번씩이나 맞다니...


빨간 우비를 입고 승선하는 유람선은 캐나다에서 운영하는 배다.

그런데 미국 쪽에서 운항하는 유람선보다

캐나다 쪽 배가 훨씬 더 나이아가라 홀스슈 폭포 가까이, 깊숙하게 접근했다.


'아니, 어디까지 들어가려고?'

'이러다 아예 폭포수를 뚫고 들어가 버리는 거 아녀?' 하고 겁이 날만큼

그렇게 제대로 말발굽 모양의 홀스슈 폭포 바로 턱밑까지 다가갔었다.


완전 감동받으시고 흡족하셨던 김여사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캐나다가 훨씬 더 장사를 잘한다며

빨간 우비가 정말 제대로였다고...

이거 안 탔으면 몰랐을 거 아니냐고...


그런 김여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짐을 느꼈다.

'울 엄마, 진짜 아이처럼 좋아하시네.'



하루 온종일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머리카락과 옷이 적당히 젖은 채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쉬면서 저녁도 먹고

그냥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줄 알았는데

제법 늦은 저녁 시간까지 밖이 환한 덕분이었을까,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직 뭔가 섭섭했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이나 하자는 김여사와 함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Niagara pathway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저녁 8시가 다 돼 가는 시간이었지만 주변은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고,

바람은 선선하고 공기는 맑고 상쾌했으며 오가는 차들도 별로 없는

아주 고즈넉하고 한적한 저녁 시간이었다.


20~30분 정도만 걷고 금방 다시 숙소로 돌아오려고 했던 우리는

결국 나이아가라 홀스슈 폭포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아주 길고 긴 산책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 숙소에서 홀스슈 폭포까지 약 5킬로 정도.

왕복으로 거의 10킬로가 되는 거리를 걸으신 우리 김여사.


물론, 나는 매일 아침마다 숙소에서 홀스슈 폭포까지

조깅을 하며 뛰어다녔던 곳이지만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신 어무이의 다리와 걸음걸이로 그 거리를 걸으시다니...

그런데도 결코 중간에 돌아가자고 하시거나 힘들다고 하지 않으셨다.


뛰는 나에겐, 한 시간이면 충분했던 그 거리를

내 손을 꼭 붙드시고 의지해가며

천천히 쉬엄쉬엄,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걸으셨다.


엄마와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동안,

어느새 주위엔 어둠이 깔리고

옅은 밤안개가 살포시 우리 모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엄마가 어떤 말씀들을 하셨는지...

솔직히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지만

그보다는,

그저 두 시간 동안 엄마 손을 꼭 잡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을 걸었다는 것만 강하게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나이아가라 폭포의 야경을 감상하는 보너스도 얻었다.

어둠이 내린 폭포에는 밤마다

색색의 불빛이 수를 놓는 레이저 쇼가 열리는데

낮에 보는 폭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 초 단위로 색깔이 바뀌는 황홀한 폭포를 넋을 놓고 감상한 후

엄마와 나는 발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우리 큰딸 덕분에 나이아가라에서 이것저것 실컷 구경하고

해볼 거 다 해봤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 너랑 손 꼭 붙잡고, 안개 낀 나이아가라를 두 시간 동안 걸었던 게

내 평생, 죽을 때까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엄만, 그게 제일 좋았던 것 같아."


강행군이었을 두 시간의 산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시던 김여사가

꿈꾸는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말씀하신다.


"아니, 고작 새 빠지게 걸은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참... 엄마도..."


울컥하며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배에 힘을 주고 애써 털털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목이 메고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껴서

서둘러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얼른 주무셔, 오늘 진짜 빡세게 걸으셨네, 우리 김여사."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짐을 느끼자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조용히 혼잣말을 해본다.


'엄마에게만 영원히 기억에 남을 오늘의 추억이 아니라고요.'

'엄마와 함께 했던 이곳에서의 모든 시간들은

앞으로 내 평생,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거예요.'

'사랑합니다, 김여사...'

딸내미와의 산책을 소녀처럼 즐거워하시는 김여사





이전 05화 친정 엄마와 추억 만들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