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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Aug 01. 2022

항구는 이별만을 위한 곳?

거북 맘의 미국 여행기 8화

돌아와요 부산항에,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흥남부두,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항구의 이별...


갑자기 웬 트로트 타령인가 싶겠지만

생각해보니 참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이별 노래가 '항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불과 몇 달 전의 기억을 힘겹게 더듬어가며

길고 긴 기행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아이고, 어머님~~~~~!"

"그래, 어멈아! 이게 얼마만이냐!"

"아니, 아버님! 왜 이렇게 살이 빠지셨어요!"


족히 6년은 지났나 보다.

미국에 계신 시부모님을 뵌 지가...

그리고 6년 만에 시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남편을 만나 얼굴을 감싸 안으며 비비셨고

외며느리인 내 손을 꼭 붙잡으셨으며

어느새 훌쩍 커버린 손녀들을 와락 끌어안으시고는

결혼식 이후 19년 만에, 안사돈인 우리 엄마와 반가운 재회를 하셨다.


남들은 항구의 이별과 눈물을 노래하지만

우리는 시애틀 항구에서 뜨겁고 반가운 재회를 했던 것이다.


각자 설렘과 기대에 잔뜩 부푼 가슴을 안고

서로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앞으로 7박 8일 동안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줄

바다 위에 떠있는 거대한 5성급 호텔이라는

로열 캐리비안 크루즈에 승선했다.

파랗고 맑은 하늘 아래, 우리 가족의 만남을 축복이라도 하듯

오후 4시, 출발을 알리는 긴 뱃고동 소리가

시애틀 항구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야~~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배야, 응?"

"아니, 내가 지금 배안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이게 무슨 배냐, 그냥 큰 호텔이나 백화점이지!"


시아버님께서 한참 사업을 하시던 시절,

어머님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안다녀 본 곳 없이

다양한 여행을 하며 둘러보셨지만

크루즈 여행은 여태 한 번도 안 해보셨다는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버님께선 크루즈에 승선하기 전부터

거대하고 웅장한 배의 규모와 크기에 감탄을 하시더니만

승선 후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으셨는지

놀랍다는 반응을 연거푸 보이시며

이게 무슨 배냐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아버님, 이거 배 맞는데요.'


우리와의 크루즈 여행을 위해

미국 중부의, 광활한 옥수수 밭이 대표적이라는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기항지인 시애틀까지 기꺼이 날아오신

팔순이 넘으신 시부모님...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시국인지라

이중 삼중의 무척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승선한 후

우선 출출함도 달래고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보따리들을 풀기 위해

갖가지 음식들이 즐비한 뷔페식당으로 향했다.


시부모님뿐만 아니라,

남편도 나도, 그리고 친정어머니도...

우리 모두 크루즈 여행은 처음인지라

모두의 얼굴엔 흥분과 기대에 찬 표정이 역력했다.


객실이 완전히 준비되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라

우리 일행은 모두 우르르 함께 몰려다니며

크루즈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경도 하고

갑판 위로 나가서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각자의 객실로 향하는 시간.

총 3개의 객실을 예약한 우리 가족은

시부모님과 나와 친정 엄마가 각각 객실 하나씩,

그리고 남편과 두 딸내미들이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약 1년 전에 미리 크루즈 예약을 하고

on board까지 삼백 여일이 남았을 때부터

하루하루 손꼽아 날짜를 확인하고 세어가며

참으로 오랫동안 이 날만을 기다려왔던지라

막상 크루즈에 승선을 하고 보니 실감도 잘 안 나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적응이 될 것만 같았다.


김여사와 7박 8일 동안 함께 묵을 객실로 들어오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무거운 피로감이 느껴졌다.

나이아가라를 떠나 길고 힘든 비행을 거쳐 

전날 오후 늦게 다시 시애틀 공항에 도착한 후

곧장 다음날 아침 일찍, 크루즈 승선을 위해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으니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친정어머니와 나는

여전히 피로가 잔뜩 쌓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엄마, 이제부터는 편안하게 쉬면서 즐기셔도 돼."

"피곤하면 객실에서 쉬시고, 출출하면 언제든지 드실 수 있으니까."


크루즈의 최대 장점 중 하나.

퀄리티 높은 서비스와 숙식이 여행 내내 제공된다는 점.

따라서, 숙식을 위해 이동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

크루즈 내에는 24시간 오픈하는 각종 식당과 bar들이 있어서

언제든 원하면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점.


그에 따른 단점이라면

그래서 크루즈 여행 이후엔,

의도치 않게 체중이 조금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발코니 가까이 있는 침대에 누우신 김여사는

이내 깊은 잠에 빠지시며 코까지 곯으셨다.

'나중에 저녁 식사하러 나갈 때까지 푹 주무셔.'



로열 캐리비안의 Quantum of the Seas.

우리 가족이 앞으로 7박 8일 동안 모든 것을 맡길 곳.


승무원 1500명, 최대 4905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고

18층 높이에 169톤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배는

우리의 목적지인 알래스카로 향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내게는 너무 춥게 느껴졌던 시애틀에서

오히려 더 추운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발코니 밖의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오늘 저녁에는 멋진 쇼 관람이 예약돼 있는데...'

슬슬 김여사를 깨워서 꽃단장을 시켜드려야겠다.


꿈에 그리던 크루즈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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