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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Aug 06. 2022

크루즈의 흔한 일상들

거북 맘의 미국 여행기 9화

"아버님! 사우나 가시는 거예요?"

"오냐, 어멈아. 너는 또 뛰러 가는 거냐?"


6년 만에 다시 만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크루즈 1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대화이다.


크루즈 여행의 여러 가지 장점들 중 하나는

아이부터 어른, 고령의 노인들까지

각각의 취향에 따라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여행의 경우, 한 가족이 함께 한다 하더라도

가령, 어른들에게는 즐겁고 재미난 스케줄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지루하고 심심할 수 있고

편하게 쉬고 싶은 어르신들에겐 힘들고 피곤한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은

'배'라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가 본인에게 맞는 스케줄을 선택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원도 한도 없이 게임을 즐기고 싶은 아이들은

각종 게임머신들이 즐비한 게임룸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면 되고

암벽 타기, 범퍼카, 롤러스케이트, 탁구, 농구, 야외 풀장에서의 물놀이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도 있다.

만사가 귀찮고 그저 뒹굴뒹굴 쉬고 싶다면

객실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발코니에 나가 짙고 푸른 바다를 보며 무념무상에 빠질 수도 있고

높은 유리 천장을 통해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솔라리움에

칵테일 한잔 옆에 놓고 썬베드에서 낮잠을 즐길 수도 있다.

화려하고 재미난 쇼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매일같이 각종 뮤지컬이나 라이브 쇼가 열리는 극장이나 bar를 찾아

수준 높은 공연들을 관람하는 즐거움을 누리거나

면세점을 둘러보며 쇼핑으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출출해지면 언제 어디서든 먹고 마실 수 있는

각종 레스토랑들이 곳곳에 항시 대기 중이고

마사지 샵이나 사우나에서 힐링을 하거나

카지노에서 잭팟을 기대하며 한판 승부를 걸어 볼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끊임없이 먹기만 해서 몸이 좀 무거워졌다 싶으면

헬스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칼로리를 소모시키거나

크루즈의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조깅트랙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선상 달리기를 즐길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지루해진 나머지 '이제 땅을 좀 밟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에는

어느새 크루즈는 기항지에 도착

배에서 내려 새롭고 낯선 기항지를 둘러보고

다양한 옵션 투어와 쇼핑도 즐기며 새록새록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 수도 있다.


그뿐인가.

크루즈 여행에서 제대로 폼 한번 잡아볼 수 있는 날,

바로 formal night이 기다리고 있다.

7박 8일의 일정 중, 총 두 번의 포멀 나잇이 있었는데

그날은 배안의 모든 사람들이 정장이나 드레시한 옷을 차려입고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영원히 추억으로 남을 기념사진도 찍고

식당과 홀을 돌아다니면서 각자의 스타일을 자랑하며 마음껏 뽐내는 날이다.


"이 크루즈 여행이라는 게 말이다,

이제 보니 가족 간에 속 깊은 대화도 충분히 나눌 수 있고

오롯이 가족 중심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

상당히 실속 있고 알찬 여행인 것 같다."

"크루즈 여행이 이렇게 좋은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말이다,

이거 이거 완전히 제대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여행이로구나."


크루즈 탑승 하루 전날까지도

갑갑한 배 안에서 일주일 동안 당최 뭘 해야 하는 거냐며

폭풍 걱정을 하셨다는 우리 시아버님의 크루즈 여행 예찬이시다.

7박 8일의 일정이 지루하거나 길다기보다는

오히려 아쉽고 짧게만 느껴졌던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크루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왠지 크루즈 여행이라고 하면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비싸고 사치스러운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물론, 배낭여행이나 저가의 패키지여행보다야 비싼 게 사실이지만

요즘처럼 무지막지하게 오른 물가에

양질의 서비스와 무한 제공되는 높은 퀄리티의 음식,

깨끗하고 안전한 숙소, 매일 바뀌는 다채로운 엔터테인먼트와 공연들

그리고 다양한 기항지 투어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면

비싸고 사치스러운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액에 비해 가성비와 만족도가 높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애틀 항구에서의 조깅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의 트레일 러닝 대회 참가와 매일 아침 조깅에 이어

크루즈 갑판 위 조깅 트랙에서의 러닝까지...

이번 여행에 앞서 세웠던 나의 버킷 리스트가

드디어 하나씩 완전히 실현되는 순간들이었다.


'너도 참 어지간하구나.'

신기방기해 하는 가족들의 표정을 뒤로하고

러닝에 진심인 거북 맘은 이른 새벽 홀로

바다 바람이 제법 차갑고 거친 크루즈선 꼭대기 층의 조깅 트랙으로 향한다.


상쾌한, 순수 그 자체의 오염되지 않은 바다 바람과

마치 심해에서 올라오는 듯한 묵직하고 강한 기운이

지친 내 몸과 마음을 풀 충전시켜주는 듯하다.

이 기분을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음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막힌 곳 하나 없이 사방이 탁 트인 망망대해 위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으며 달리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을 다짐하며

크루즈에서의 흔한 일상을 즐기는 거북 맘이다.


내일은 또 어떤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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