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빛, 붉은구상난풀을 찾아서

구상난풀. 그 이름만 들어도 깊은 숲 어딘가, 구상나무가 드리운 그늘 아래 조용히 피어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 꽃은 해발 1400m 이상의 고지대, 구상나무 숲에서 처음 발견됐고, 그래서 그 이름을 얻었다. 그 꽃을 만나기 위해 깊고 고요한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희귀한 붉은수정난풀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수정처럼 투명한 꽃을 피운다고 해서 ‘수정난풀’이라 불리는 꽃. 그런데 그 하얀 투명한 꽃이 붉게 물들어 피어났다는 것이었다. 신비로운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 꽃을 찾아 익숙한 숲을 헤맸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소리 없이 흔들리고, 숲의 그림자가 차분히 내려앉은 그곳에서 나는 한참 동안 그 꽃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기떼가 달려들고,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지만, 내 마음속 조바심은 점점 커졌다. 꽃은 오래 피어 있지 않는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금세 시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붉은수정난풀이라 여겼던 그 꽃이 사실은 '붉은구상난풀'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꽃을 만날 행운이 찾아왔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날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온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붉은구상난풀은 이미 설악산에서 발견됐지만, 제주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부생식물인 이 꽃은 엽록소 없이 황갈색을 띠고, 깊은 숲 속의 그늘에서 자란다. 수정난풀은 줄기 하나에 단 한 송이의 꽃을 피우지만, 구상난풀은 한 줄기에 여러 송이의 꽃을 피운다.



고요한 숲. 저녁노을처럼 붉게 타오르는 꽃대를 곧추세운 채,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붉은구상난풀. 바람이 살며시 불어와 나뭇잎을 걷어 올리자, 한 줄기 햇살이 숲 속으로 스며들다 금세 사라져 버렸다.

"아, 붙잡을 수도 없는 햇살이여. 야속한 햇살이여."

나는 다시금 숲 속으로 햇살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모기떼가 몰려들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단 한 줌의 햇살이라도 꽃잎 위에 내려앉기를 기다렸다.



햇살은 예고 없이 살며시 숲 속으로 내려와 붉은 꽃잎을 어루만지고, 다시 서둘러 사라졌다. 그 찰나의 순간을 온 마음으로 담아내려 했다. 기다림과 인내만이 완전한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아름다움을 담아내지 못했다. 아, 아직은 부족한가 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신비로운 꽃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내 마음속에 담을 수 있겠지.



꽃잎이 마치 날개를 펴고 비상할 듯한, 신비로운 붉은구상난풀. 그 꽃을 다시 만나기 위해, 또다시 숲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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