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위에 피어난 순백의 꽃

낚시돌풀

제주의 바닷가는 검고 거친 현무암으로 둘러싸여 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그을린 듯 거무튀튀한 돌들. 화산이 분출하며 용암이 흘러내리고, 뜨거운 숨결이 굳어져 만들어진 현무암이다. 그 표면에는 숭숭 뚫린 구멍들이 남아 있는데, 이는 용암이 식어가는 동안 빠져나간 화산의 숨결. 그 숨결마다 작은 생명이 뿌리내리고 싹을 틔운다.


척박한 돌 위에도 꽃은 피어난다. 흙 한 톨, 모래 한 알조차 드문 바위틈에도 바닷바람을 견디며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생명들이 있다. 갯메꽃, 해국, 갯까치수영, 그리고 낚시돌풀 등 이들은 거센 바람과 염분을 품은 바다를 마주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간다.


갯메꽃은 바위를 붙들고 줄기를 길게 뻗어 나가고, 해국은 군락을 이루어 바람을 이겨낸다. 갯까치수영과 낚시돌풀은 도톰한 잎에 수분을 저장해 가혹한 환경을 버텨낸다. 염생식물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지혜로 생의 자리를 터득한다.

그중에서도 낚시돌풀은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채 손톱만 한 작은 꽃을 피워내는 모습은 더없이 순수하다. 봉오리일 때는 옅은 분홍빛을 띠다가, 이내 순백으로 터져 나와 바닷바람에 흔들린다. 작은 타원형의 다육질 잎은 물기를 머금은 듯 탱글탱글하고, 그 위에 맺힌 꽃은 마치 파도 속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 같다. 검은 현무암 위에 초록빛 잎과 대비되는 그 하얀 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낚시돌풀이란 이름 또한 정겹다.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모습이 낚시하는 풍경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름조차 바다의 풍경과 어울려, 그 자체로 섬이 들려주는 노래 같다.


거센 바람과 파도에도 꺾이지 않고, 소박한 꽃을 피워내는 낚시돌풀. 그 모습은 마치 제주인의 삶과 닮아 있다. 척박한 돌밭에서도 씨앗을 뿌리고, 거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강인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

바위 끝에 피어난 순백의 얼굴을 마주하면 문득. 삶 또한 이처럼 고난을 이겨낸 끝에 가장 맑은 꽃을 피운다는 것을. 작은 꽃 하나가 들려주는 섬의 노래가 파도 소리에 실려 오래도록 귓가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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