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며느리밥풀'
조석으로 바람이 선선해지고,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가을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들꽃조차 애잔한 빛을 띠며 서성인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흔들리며 붉게 타오르는 꽃며느리밥풀. 배고픔에 시달리다 떠난 넋이라도 깃든 걸까.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한없이 여린 몸을 흔들며 애잔하게 속삭인다.
새색시의 볼처럼 수줍은 붉은 꽃잎, 그 입가에 꼭 물고 있는 하얀 쌀알 두 톨. 꽃며느리밥풀에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옛날, 심술궂은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하던 착한 며느리가 밥이 다 되어 갈 무렵, 뜸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 밥알을 입에 넣은 그 순간, 시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가혹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가차 없이 내쫓았다.
기댈 곳 없던 그녀는 결국 굶주림 속에 생을 마쳤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 그녀가 쓰러진 자리에서 한 송이 붉은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은 마치 며느리가 마지막까지 품었던 밥알처럼, 작은 하얀 꽃술을 입에 문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꽃을 보며 착한 며느리가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 꽃을 ‘꽃며느리밥풀’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어머니들의 시대에는 고부간의 갈등이 깊었다. ‘시집살이 석삼년’이라는 말처럼,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소경 삼 년을 견디며 소처럼 일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번 시집가면 죽어서도 그 집 귀신이 돼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여인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희생해야 했다.
이혼이란 꿈조차 꿀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현대 여성들은 더 이상 그 억압 속에 갇혀 있지 않는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힘을 지니며, 필요하면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됐다.
꽃며느리밥풀은 반기생식물이다. 스스로 살아가지만, 완전히 독립할 수는 없는 존재. 남성에게 예속된 채 살아가야 했던 옛 여인들의 삶과도 닮아 있다.
꽃며느리밥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화려한 붉은빛 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스며든다. 가녀린 줄기 끝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서럽게 울고 있는 듯한 모습. 그러나, 그렇게 애잔하게 피어 있기에 더욱 강인한 꽃. 세찬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자신만의 빛을 내며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꽃며느리밥풀이 또 한 번 붉게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