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품은 작은 별

유월이 오면 문득 떠오르는 들꽃이 있다. 깊은 산기슭에서 은은한 자태로 피어나는 한 떨기 백합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과는 사뭇 다른, 작고 앙증맞은 '금강애기나리'가 그리워진다.

여름을 알리는 나리꽃 식구들이 하나둘 피어날 즈음, 털중나리, 참나리, 땅나리, 하늘말나리, 꿈에 그리던 솔나리까지 제법 많은 나리들이 산을 물들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꽃, 금강애기나리와 애기나리는 유난히 사랑스럽다. 오월 말부터 조심스레 꽃망울을 열기 시작한 금강애기나리는 유월 초가 되면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향해 미소 짓는다.

금강애기나리

애기나리는 수줍음이 많아 고개를 푹 숙이고 피어나지만, 금강애기나리는 마치 발랄한 꼬마처럼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활짝 내민다. 애기나리는 중산간 오름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금강애기나리는 오직 높은 산에 올라야만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더욱 반갑고 귀하다.

금강애기나리는 ‘진부애기나리’라고도 불린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에서 처음 발견돼 붙여진 이름이지만, 굳이 그곳까지 가지 않아도 한라산을 오르다 보면, 1,600m 고지 즈음에서 이 귀여운 꽃을 만날 수 있다. 검은깨처럼 점점이 박힌 작은 꽃이 초록빛 풀숲 사이에서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마치 말괄량이 삐삐를 닮은 듯한 귀여운 꽃. 그 모습을 어여쁘게 담아내고 싶었지만, 쉽사리 그 사랑스러움을 다 담아내기란 어렵다. 여섯 장의 꽃잎을 활짝 열고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작은 꽃을 보면, 누구라도 입맞춤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애기나리는 둥굴레를 닮은 잎을 지녔다. 꽃이 피어야만 비로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작은 들꽃. 수줍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세심히 살펴보면 어느새 내 발길을 붙잡는다.

애기나리

들꽃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그렇게 발밑을 내려다보는 내 모습이, 숲 속에서 수줍게 미소 짓는 애기나리와 닮아 있는 듯하다. 작은 꽃송이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눈 속에 포착된 애기나리.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부끄럼 많은 꽃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애기나리보다 더 낮은 자세로 엎드려 들여다보니, 꽃술도 꽃잎도 모두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애기라는 이름이 절로 실감 나는 순간이다.


산바람을 타고 가녀린 몸짓으로 춤을 추는 자그마한 꽃. 해마다 만나도 다시금 눈맞춤하고 싶은 사랑스러운 들꽃.


한라산의 너른 품속에서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송이들, 때로는 눈맞춤조차 쉽지 않지만, 나는 그 꽃을 만나기 위해 다시 한라산을 오른다.

한라산에서는 금강애기나리가 필 즈음 애기나리도 함께 피어난다. 그 깊고 너른 품속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작은 들꽃. 그 앙증맞은 아름다움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마음 깊이 행복을 느껴본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