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꽃

나도옥잠화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산길을 오른다. 그림자마저 숨어버린 칠흑 같은 산길은 으스스한 기운으로 감돈다. 산물 소리가 깊은 장막을 깨우며 흐른다. 그 물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뒤척이며 흘러가는 산물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밤새 흐르고 있을 터.


꽃을 향한 발걸음은 두려움도 가볍게 만든다. 나도옥잠화를 볼 생각에 힘이 절로 솟는다. 세상의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오직 순수한 눈으로 들꽃을 만나고 싶다. 산물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지만 어쩌랴. 세상사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산길을 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무게에 헉헉거리며, 걷다 보니 여명이 밝아온다.


칙칙했던 어둠이 스러지고, 어슴푸레한 빛이 산길을 물들인다.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 무거운 짐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까. 운무에 맡길까. 산길 어귀에 내려놓을까.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짐은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다. 그때, 새벽을 깨우는 산새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 노래에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나도옥잠화의 단아한 몸짓에 발길이 멈췄다. 하얀 꽃잎 위에 밤새 내린 이슬비가 촉촉이 맺혀 있다.

나도옥잠화2.jpg

살며시 고개를 숙인 수줍음과, 난처럼 고고한 품위가 공존하는 꽃.


그 앞에서 나는 어느새 무거운 짐을 훌훌 내려놓는다. 빛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순간.

붉은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도, 이 작은 들꽃이 내 앞에 있음으로 이 순간이 충분히 행복하다.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는 그 순백의 꽃잎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지만, 오늘은 다행히도 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한참을 나도옥잠화 앞에 머무른다.


고요한 새벽, 풀잎에 젖은 이슬의 싱그러움, 산새의 노래가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깨달았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꽃을 쫓는 눈먼 사람이 되지 말자. 꽃을 좇되,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꽃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풀숲에 맺힌 이슬 한 방울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인연조차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본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