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군자의 인품을 닮은 꽃

여름의 전령사 '매화노루발풀'

매화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솜털 같은 눈송이를 맞으며 시린 하얀 손톱을 살며시 펴 올리고,

순백의 눈처럼 고결한 자태로 봄이 왔음을 조용히 알린다.


그렇다면 여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전령사는 어떤 꽃일까?

한라산 정상에서, 맨 먼저 여름을 알리는 나무가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무, 칼바람을 견디기 위해 바위에 바짝 몸을 낮춘 채, 온몸을 움츠리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다. 그러다 봄이 끝날 무렵, 천상을 향해 순결한 몸짓으로 꽃을 피운다. 그것이 바로 '돌매화나무'이다.


돌매화나무꽃이 피기 시작하면, 한라산의 여름꽃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피어나기 시작한다. 한라산 정상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오름마다 여름의 꽃길이 열린다.


울창한 숲 속, 여름의 또 다른 전령사가 있다. 고결한 군자의 자태로 피어나는 꽃. 나는 이 꽃을 '숲매화'라 부르고 싶다. 매화꽃을 닮은 '매화노루발풀'이다. 매화노루발풀은 수줍음이 많은 꽃인가 보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울창한 숲 속에서 한줄기 빛이라도 받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하지만,

매화노루발풀은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늘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꽃잎 속을 바라보려면 낙엽 위에 누워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아름다운 꽃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꽃잎은 매화보다 작지만, 품격만큼은 뒤지지 않는 단아한 숨결이 흐른다.

물욕을 벗어버리고, 깊은 산속에서 고결한 인생을 살아가는 군자를 닮았다.


어둡고 칙칙한 숲 속에서, 하얀 등불을 밝히며 꽃을 피운다. 매화노루발풀과 사촌 격인 노루발풀이 있다.

노루발 (1)-1.JPG 노루발풀

매화노루발풀의 잎은 작고 긴 타원형이며, 노루발풀의 잎은 넓은 타원형이다. 꽃은 비슷하지만, 노루발풀 암술대는 길쭉하게 나와 있다. 둘은 노루발과에 속한다. 상록성으로 푸름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이처럼 매화를 닮은 꽃들이 제법 많다.

민틋한 오름에 피는 '물매화', 수생식물인 '매화마름', 모두 군자의 기품이 스며든 꽃이다.


그 고요한 아름다움 속에서 계절을 이어주는 전령사로, 고결한 빛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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