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고, 이른 아침부터 산새들이 나를 깨운다. 창을 열면 싱그러운 깃발이 펄럭일 것만 같다. 그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가고 싶지만, 이제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여유를 두고 걸어야겠다. 예전 같았으면 혼자라도 급한 마음에 아침부터 달려갔을 것이다.
빗방울이 하나둘 풀잎에 맺힌다. 창을 열면 초록빛 물결이 흐르는 유월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지만, 나는 잠시 귀를 닫는다. 유월을 맞이하지도 않았는데, 보낼 준비도 못 한 탓이다.
제주를 감싸는 감귤꽃 향기에 흠뻑 젖고 싶었지만, 그 흔한 향기조차 마음껏 느껴보지 못한 채 아쉽게 오월을 떠나보냈다.
유월을 맞이할 채비도 끝내지 못했는데, 칠월이 힘찬 말발굽 소리를 내며 용진각 계곡을 타고 쿵쿵거리며 달려온다.
가슴 설레는 칠월의 말발굽 소리에 깨어나야겠다. 싱그러운 여름 나무처럼 팔랑이며 일어서야겠다. 초록의 깃발을 힘차게 휘날리며, 열광하는 태양을 온몸으로 맞이해야겠다.
지난 여름날, 순채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타원형 잎만 물 위로 가득 펼쳐져 있을 뿐, 꽃은 보이지 않았다.
순채꽃이 오전에 핀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며칠 후 다시 찾았으나, 이번에는 물 위로 꽃대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순채꽃이 진 뒤에야 찾아간 것이다. 그렇게 일 년을 기다렸다. 일 년은 긴 시간이 아니었다. 일 년 만에 꽃을 볼 수 있다면, 그 기다림조차 기쁨이 된다.
그러나 예전에 보았던 꽃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이제는 그전보다 더 깊이, 더 오래 꽃과 교감하고 싶다.
태양이 숲을 헤치고 나와 수면을 비출 무렵, 물결이 조용히 꿈틀거린다. 수면으로 꽃대를 올리는 순채꽃이 힘겨운 숨을 내쉰다.
마치 일광욕이라도 하듯, 물 위로 하나둘 떠오른다. 햇살을 머금은 꽃대가 힘겹게 기지개를 켜더니, 자줏빛 꽃잎이 천천히 열린다.
자줏빛 순채꽃이 수면 위를 가득 채운다. 꽃을 피우기 위해 잠잠했던 못은 요동을 친다. 순채꽃은 못의 요정이 되어, 수중 발레를 시작한다.
자연의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춤을 춘다. 태양이 수면 한가운데로 스며들 즈음, 못은 다시 잔잔해진다. 하나둘, 타원형 잎 밑으로 스며들며 요정들은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