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콩 튀는 소리에 배 부르는 한 해!
겨우 내 얼었던 대지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명체들이 움을 틔우고 세상 밖으로 내밀 준비를 하고 있는 이월초 하루!
알맞게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옛날에는 겨울 휴식이 끝나고 땅을 갈아엎고 씨 뿌리기 위한 농사 준비가 가까워졌음을 뜻하는 절기였다.
이날은 콩 볶아 먹는 날이기도 했다.
톡톡 튀는 소리가 곡식 여무는 것과 비슷했기에 풍작을 기대하기도 했고 겨울철 부족한 단백질 보충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이기도 했으리라 짐작한다.
정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흐르는 큰 무쇠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솥이 우리들의 먹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요술 솥단지였다.
겨우 내내 우리들 간식으로 고구마 쪄서 내었고, 제사나 설이 돌아오면 하루 종일 장작불로 무쇠솥을 달구었다.
봄이 시작되는 이월 초 하루 함지박에 콩을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기 뺀 후에 콩볶기가 시작되었다.
주걱으로 젓다 보면 다글다글 한 소리에 저절로 어머니는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물기 마른 콩이 더 청명한 소리로 다글거리며 톡! 톡! 콩 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달달하고 고소한 콩 볶기가 완성이 된 것이다.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 어머니는 콩을 볶아 내고 들기름으로 기름칠한 후 가마솥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문질렸다.
뜨거운 장작불에도 끄덕 없이 삼시세끼 밥과 함께 간식거리를 일년 내내 먹거리를'만들어 냈다. 해가 길어지는 봄이 되면 왜 그리 먹고 싶은 것도 많았는지 바쁜 어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졸라댔다. 밀가루에 베이킹파우더와 사카린, 소금 넣고 반죽 한 다음 큰 가마솥에 채반 놓고 삼베 보자기를 깔고 밀가루 빵떡을 금방 쪄주시곤 했다.
시간이 있을 때는 막걸리로 물과 희석해서 반죽한 다음 햇볕이 잘 드는 장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날 햇볕에 따라 약간 시간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여덟 시간 정도 두면 포삭 포삭 기포가 생기고 잘 부풀어 있었다,
몇 번 뒤적이고 난 뒤 삼베보자기 깔고
여러 번 나누어서 찌면 하루 내내 막걸리에 발효된 달달 구리 한 빵 냄새가 집안 가득 진동했다.
보리방아를 찧고 난 후에는 마지막 나온 부드러운 보리 겨로 가끔 빵을 쪘다. 시커멓고 볼품없어 개떡이라고 했는데 되직하게 반죽한 보리 겨를 호박잎 깔고
밥 위에 얹어서 쪄내기도 했다.
먹어보면 쫄깃쫄깃했지만 일단 보기에도 시커멓고 별로 맛은 없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 때 나락 알을 세서 쌀을 군수물자로 수탈을 당했던 때라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그때 드셨던 보리개떡도 가끔 드시고 싶으신지 한 번씩 쪄서 드시곤 했었다.
식이섬유가 많아서 오히려 웰빙식품이지 않았을까?
콩 튀는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던 이월초하룻날은 우리 세대들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건강식으로 볶아서 파는 콩들이 시중에 많이 널려 있어서 집에서 굳이 수고하지 않아도 어느 때나 고소한 콩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무쇠솥에서 톡 톡 튀며 볶아내던 콩 맛의 고소함을 비교할 수가 있을까?
갓 볶은 뜨거운 콩을 곡예하듯 공중으로 날려 쫓아가며 받아먹던 그 시절 어제일 처럼 다가온다.
# 콩 # 이월초하루 #무쇠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