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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신발이 몇 켤레나 되나요?

우리랑 함께 했던 고무신 이야기

by 진주

(40년이 넘은 타이아 고무신)


어린 시절 제일 기억에 남은 신발은 옆에 나비가 달린 검은색 고무신이다.

발은 커 가는데 고무신이 워낙 질겨서 일 년 넘게 신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철이 없어서 틈만 나면 뜰 방 돌에 대고 문질러 댔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낡은 신발을 보자 오래 신었다 칭찬하시고 그때 당시 유행했던 빨간색 고무신을 사다 주셨다. 새 신발 신기전에 하는 예식이 있었다.

허드레로 사용하는 칼로 신발 한가운데를 열십자로 그어놓았다. 새 신발과 헌신발을 혹시 바꿔 신어도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처음으로 봄 소풍 때 운동화를 사다 주셨다.

저녁 내내 머리맡에 두고 일어나서 한 번씩 신어보고 방안을 휘 젖고 다녔다.

특별한 행사 때만 신었던 운동화라 소풍 마치고 오면 깨끗하게 밑바닥을 닦아서 벽장에 올려 두었다.




어느 해 여름 화려한 색깔에 나비가 달 린 슬리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분홍색 슬리퍼를 신고 걸을 때마다 따닥! 따닥! 부딪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슬리퍼를 냇가에 가서 씻을 때면 뜰 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고무신도 함께 가져갔다.

수세미가 없던 시절이라 짚을 이용 해서 닦았다. 뻣뻣했던 짚이 닦다 보면 부들부들 해져 손에 착 감겨서 한층 닦기가 수월했다.

깨끗이 닦은 고무신을 걸레 빠는 동안 돌에 엎어 놓으면 볕 아래서 뽀드득뽀드득 말라

옥빛으로 빛나 있었다.

할머님과 어머니께서도 새 신발은 항상 벽장에 올려두었다. 장날, 일가친척 결혼식, 행사 있을 때만 꺼내 신으셨다.

한복 치맛자락 살포시 올리고 하얀 고무신 신고 가시는 뒷모습이 당당하고 고와 보였다.



지금은 집집마다 신발이 가득 넘쳐나고 있다. 여름 운동화, 등산화, 높은 구두, 단화, 실내화, 샌들, 슬리퍼, 부추 등 그러나 가짓수가 많아도 내가 편하게 신은 신발이 있다. 시장 갈 때나 외출할 때 간편하게 신은 신발은 낡은 헌 옷처럼 내 발에 맞추느라 적당하게 늘어진 것이 좋았다. 선물로 받았던 플렛 슈즈가 내 몸에 분신처럼 따라다녔다. 적당히 늘어나서 깔창을 깔아도 내 발에 맞아서 편했다. 얼마 전 무릎 연골에 금이 간 뒤로 랫 슈즈를 즐겨 신었는데 결국 수명이 다 되었다.

구두 수선 집에 맡겼지만 늘어난 고무줄을 비닐 가죽으로 박음질해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다.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은 곳, 슬픈 곳, 직장까지 발자국을 남겼던 신발이었다.

버릴 수가 없어서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가 결국 이사하면서 버리고 왔다.




낡은 신발을 버리고 돌아서며 할머니, 어머니가 생각났다. 떨어진 고무신으로 엿을 사 먹을 수 있겠지 기대했지만 한 번도 사 먹지 못했다. 이제 그분들의 삶을 따라갈 수 없지만 나도 나이 든 탓에 자녀들과 마찰이 자주 일어난다.

무조건 안 쓰는 물건이나 신발, 그릇 등은 싹 버리라는 자녀들 말에 "쉽게 버려진다냐 다 사연이 있는 물건들인데" 하며 쌓아 두기 좋아했다. 결국 이사할 때 나눔과 버림을 하고 왔더니 머릿속이 청소된 것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버리면서 물건들에 대한 사연으로 지나간 일들이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신발을 추억하다 보니 우리나라 신발의 변천사가 지나간다.

일제강점기 신발이 귀해서 짚신을 신고 다녔던 우리 할머님과 어머님들! 오랜만에 고무신 몇 켤레가 마을로 보급되었다. 안에서 식구 중 한 분이 제비 뽑기를 했다. 고무신이 귀하던 시절이라 당첨이 된 가정은 지금 로또 맞은 것처럼 좋았다.

자유당 시절에는 선거 철이 되면 집집마다 반장이 방문해서 후보 이름이 쓰인 고무신 한 켤레씩 선물로 주었다. 지금 생각하연 선거법 위반이다. 남학생들은 고무신 신고 공차기하다 공보다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갔다. 겨울방학 시작하는 날 산으로 토끼몰이를 갈 때도 고무신에 새끼줄을 매고 올라갔다.





가끔 카페나 당 한쪽에 장식품으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검정고무신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반가우면서도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배고픈 시절 우리랑 함께 견디어온 애환이 서린 우리들의 신발이기 때문이리라~


# 슬리퍼 # 수세미 # 추억 # 엿장수 # 토끼몰이 # 장식품 # 자유당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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