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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Oct 19. 2022

네가 쥐어준 별

나의 화요일 교실 (1)


교육기업에서 13년을 일했다. 짧지 않은 시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아현동 산동네에서 인턴 교사로 근무했던 2년간의 기억이다.


나는 아직도 나의 화요일 교실, 아현동을 눈으로 그릴 수 있다. 팔이 짧은 내복을 입은 아이들이 골목길을 내달리고, 도둑고양이들이 훤한 대낮에도 먹을 것을 찾아 어슬렁거리던 곳. 언덕길 양쪽으로 구불구불 끝이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들을 들어가면 음식 쓰레기 봉지 옆으로 엄지만 한 바퀴벌레들이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낮에 일하러 가신 엄마 아빠 대신, 아이들의 높고 청량한 목소리만 거리의 공기를 달게 채우던 그곳. 거기서 나는 나의 첫 제자들을 만났다.


현우네는 아현동에서도 더 어려운 집에 속했다. 그런 집이 있다는 곳도 거기서 처음 알았다. 몸을 숙여야 통과할 수 있는 녹슨 슬레이트 대문을 지나면 바로 방으로 통할 수 있는 작은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화장실과 부엌은 한 집을 사는 이웃들과 같이 쓰는 구조였다.

그 집의 한 평짜리 방에서 현우는 엄마와 함께 살았다. 그렇지만 현우의 방은 항상 정돈되어 있었고 정갈했다. 현우는 내가 오기 전에 작은 앉은뱅이 소반에 미리 공부할 책과 노트, 그리고 방석을 준비해 놓았다. 어머님이 준비해 주신 소박한 간식도 함께였다. 간식은 시원한 박카스일 때도 있었고, 빨대가 꽂아진 요구르트 일 때도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는 내게 현우는, "엄마가 선생님 드리라고 하셨어요." 하며 수줍게 내 쪽으로 음료수를 밀어주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엄마의 모습이 눈에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낡은 옷이지만 깨끗하고 정갈하게 입었을 것이고, 항상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바를 것 같았다. 현우의 모습이 그랬고, 그 한 평짜리 방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가장 감동을 받는 날은 회비를 받는 날이었다. 학습지는 매 월 마지막 주에 차월의 회비를 받는다. 아현동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가난한 산동네로 남아있었지만 내가 후에 3-4년 교사와 팀장으로 근무했던 교실 중, 가장 회비 회수율이 좋았던 곳이었다. 현우의 집도 그랬다. 회비를 주는 날이 되면 앉은뱅이 밥상에 책과 노트, 음료수 외에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겉면에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너무나 반듯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세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33,000원이 들어 있었다. 현우가 공부하는 영어 과목의 회비였다.

현우네는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회비를 미루거나 거른 적이 없었다.


회비를 처음 받던 날, 나는 그 봉투를 받아 들며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욱여넣었던 느낌을 기억한다. 나는 짐작했다. 현우 엄마가 많지 않은 월급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그 돈을 떼어 아이의 교육비로 소중히 넣어준다는 것을. 벌써 6학년이 된, 중학생을 준비하는 큰 아이를 여느 아이처럼 어학원도 공부방도 보내주지 못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사랑과 헌신으로 현우를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고작 10분의 수업시간이지만 그 수업을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현우는 엄마의 헌신과 믿음대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다. 한 주 학습지에 있던 모든 문장과 단어를 모조리 다 외워왔다. 학원을 다니면서 학습지를 그저 보조 수단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공부하지 않는다. 빈칸만 채워 놓기도 하고, 눈치껏 풀기도 하고 그저 교사의 검사가 끝나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현우는 책을 차곡차곡 모아두었었고, 또 보고 또 풀고 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 집에 가면 최고의 교사가 되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분했다. 현우가, 엄마가 나를 대하는 믿음처럼. 그 33,000원에 담긴 회비의 의미를 알았기에, 그 흰 봉투의 가치를 알았기에,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고 쏟아부어주었다. 현우는 감사하고 기특하게도 다 받아들여주었다. 배운 대로 영작해 보라 하면 최선을 다해해 왔고, 내가 사서 선물해 주었던 중학 단어집도 빠짐없이 외워왔다. 현우의 집을 나올 때면 더 가르쳐주지 못해, 더 알려주지 못해 항상 아쉬웠다.


현우가 누구보다 멋지고 의젓하고 바른 청년으로 자랐을 것이라는 걸,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서비스도 어떤 물건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그것이 훨씬 값진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현우의 집에서 배웠다. 33,000원짜리 학습지도 부모가 어떤 학습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에게 330,000원짜리 수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라도, 부모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 아이는 정말 ' 바르고 큰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삶의 자세 대부분을 나의 첫 동네, 아현동 산동네에서 배웠다.


워킹맘으로 회사에서 13년을 일하는 동안,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따뜻했던 아현동에서의 그 기억은 나를 계속 회사로 붙들어 주는 힘이 되었다. 어떤 이에게는 우스울 수 있는 학습지 한 권이 또 어떤 이에게는 학교 외의 유일한 학습의 도구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떤 부서에 있건 어떤 직위에 있건 정말 진심을 다해 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참 부족한 능력의 내가, 후에 교육부서와 마케팅 부서로 연달아 스카우트도 되고, 중요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하는 책임자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퇴사 후에도 늘 아이들의 시선에 긴장하는 엄마가 되어 있는 이유도, 아현동이 나를 단단히 깨우친 탓이다.

 





내가 품은 마을은 별이 가장 가까웠던 곳

세상에서 가장 낮은 집들이

가장 높고 빛나는 꿈을 꾸었어

너는 알까 몰라,


마을을 걸을 때 나는 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걸었어

아이들의 꿈을 행여나 깨울까 봐


뒤돌아 바라보면 지붕 위로 푸르게 빛나는 별이 보였어

나는 줄 것이 없어 두 손을 펴면

아이들의 별이 내 손에 있네

아무도 모르게 쥐어준 별이 고마워

나는 달뜬 이마에 문득 손을 짚었지


그래, 그것은 식지 않는 별이었어

네가 쥐어준 별



ㅡ 2022. 7 <네가 쥐어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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