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 essay
아포리아(aporia)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인간이 끝내 마주하게 되는 난제이자 모순을 뜻한다.
배우자가 있든 없든
우리는 이미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살아간다.
혼자가 둘이 되든, 둘이었다가 다시 혼자가 되든
우리 존재의 완전함에는 본질적인 변화가 없다.
관계의 형태가 바뀔 뿐, 삶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문제는
나의 정신적·물질적·육체적 상태를
어디까지 스스로 인식하고 책임지느냐에 있다.
행복은 언제나 나의 책임 안에서 살아간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 원인을 배우자나 상대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잊는 순간
부부도 연인도 사랑도
아포리아―해결되지 않는 난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사실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의 대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려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임을.
사랑한다면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폭력, 무시, 갈등처럼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는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사랑한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
길을 잃었기 때문일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나의 입장에서만 이해하려 할 때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생각으로 상대를 짐작할 뿐,
상대의 자리에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려 한다.
배우자, 연인, 상대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독립된 존재임을.
이제는 늙었지만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원색적인 비난도,
오래된 감정의 장부도 내려놓고
그냥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 보자고.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직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확인 속에서만
행복한 부부와 연인의 삶은
다시 가능해진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배우자 혹은 연인, 상대에게
차분히, 아주 촘촘히
마음의 창가에서 다시 한 번 노크해 보려 한다.
늙었지만
정신으로든 육체로든
한 번 더 정열적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솔직히 말해 보고 싶다.
그러나 그 노크가
끝내 열리지 않더라도
나는 더 오래 서 있지 않으려 한다.
정열은 아직 남아 있으나
그것을 증명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늙은 사랑은
불타오르기보다
조용히 식어 가는 법을
먼저 배운다.
말을 아끼고
기대를 낮춘 자리에서
술 한 잔과 음악 한 곡이면
하루는 충분히 닫힌다.
사랑이 남아 있다면
그대로 품고 가고,
남아 있지 않다면
미련 없이 놓아준다.
아포리아는
끝내 풀리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길을 잃지는 않았다.
나는 오늘,
사랑을 탓하지 않고
나를 돌려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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