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을 지나 산자락이 시작되는 길섶에 갯 무꽃이 무리 지어 피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준비해온 생애 첫 날개 짓을 여기쯤에서 시작해 볼까. 꽃나무들이 무쩍무쩍 하늘빛을 자르며 잎 살을 넓혀간다. 연두색 나뭇잎들이 어긋이 바라보며 잎을 내미는 숲에 생기가 가득하다. 숲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내 날개치기를 응원하는지 소란스럽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며 으스스함이 밀려들던 날이었다. 음침한 사마귀의 행보를 보고 재빨리 이파리 밑으로 몸을 숨겨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녹음이 짙은 숲에서 잎사귀를 정교하게 마름질하여 집을 마련할 때는 침이 마르고 진이 빠졌다. 날개치기에 대한 열망은 필살기로 이뤄졌다. 몇 차례의 허물 벗기가 비상에 대한 치열한 도전이었고 날아오르기 위한 과정임을 몸소 익혔기 때문이다. 나는 꼬깃꼬깃 오그라져 있던 실핏줄 같은 날개 그물을 폈다. 숲에서 햇살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촉촉했던 날개가 햇살과 숲 바람으로 거의 말려졌다.
막막한 기다림에 묻혀 있는 동안 어둠은 일상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꿈을 꾸고 물렁한 몸을 추스르며 실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해 부신 숲에서 햇빛과 바람이 부드럽게 섞이며 나의 살을 어루만지고 섬세하게 날개펴기에 힘을 실어 주었다. 구름은 부풀었다가 흩어지면서 연처럼 춤을 추었다. 해안선 밑에서부터 저 멀리 물마루까지 하늘빛으로 물드는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렴풋이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나를 날려 보내겠다는 꿈 하나를 품고 가느다란 몸으로 힘을 다해 나를 잉태하였을 터였다. 날고자 했던 나의 꿈은 엄마의 소망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난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체 오로지 나만 날아오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허물을 벗어내었다.
세상의 빛은 붉고 희고 푸르게 변해갔다. 낮과 밤이 교차될 때마다 어둠이 일정하게 찾아들었다. 햇살이 비춰오면 어둠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드넓은 바다에는 풍랑이 치고 파도는 무섭게 달려들었다. 숲은 끄떡 않고 바람응 껴안고 파도소리를 벗 삼아 나무들을 키웠다. 푸른 숲은 새소리로 가득 찼으며 나뭇잎들은 밤이 오면 세상 소리를 덮으려는 듯 드세게 출렁였다. 다음날 아침 햇살에 반사된 나의 날개가 숲에서 더욱 형형해졌다. 온갖 색으로 피어나는 숲 속의 아침은 영롱한 빛으로 나에게 찬란한 세상을 꿈꾸게 하였다.
세상의 빛이 내게로 쏟아졌다. 나의 노랑 날개는 꽃그늘 속에서 원색으로 도드라졌다. 비에 젖지 않도록 날개 표면에 비늘 가루를 빼곡히 채우고 힘차게 날개를 저어보았다. 희끈거리는 몸을 치켜세우며 수평으로 몸을 움직여도 보았다. 기울어진 날개를 바로잡으며 좀 더 높이 날아보았다. 몸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제법 높이 날아올라와 있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숲의 꼭대기 키 큰 나무들의 우듬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현기증이 돌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마 곁을 떠나온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채 바다 위에 앉아 보고 싶다는 욕망이 겁 없이 꿈틀거렸다.
천천히 더 힘차게 날아올랐다. 산 중턱쯤에 다다르자 동백나무가 무덕무덕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새빨간 꽃송이가 벌어져 흐드러졌다. 동백나무 숲에서 날개를 접고 한 걸음 쉬어가고 싶었다. 가만가만 더듬이를 내밀고 조심스럽게 꽃잎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심장이 콩닥거렸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꽃술 안으로 긴 대롱을 밀어 넣었다. 꽃술을 싸안은 꽃잎에서 향기가 물씬 피어올랐다. 속 안에서 끈끈한 단물이 빨려 나왔다. 첫 입맞춤에 취해 정신이 아득해졌다. 첫 단물에 마디진 내 꽁지가 전율하듯 파닥거렸다. 꽃물의 달콤함은 온몸으로 젖어들었다. 날아오르고자 애쓴 동안의 산물은 흥건히 나를 감동시켰으며 더 높이 날아오르는 힘을 채워 주었다. 이것이 허물을 벗어낸 보람이었을까. 혼자만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혼미한 채 몸뚱이를 추슬러 동백꽃 흐드러진 숲에서 잠시 날개를 접었다. 핏빛 동백꽃이 땅에 떨어져 피어난 그곳은 왠지 낯이 익었다. 엄마의 자궁 안에 있었을 때처럼 나의 몸이 따뜻해져 오더니 성지처럼 느껴졌다. 입안에 든 단물이 몸의 열기로 데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징검돌을 내딛듯이 붉은 동백꽃을 더듬거리며 옮겨 디뎠다.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보면서 울컥하여 엄마 생각에 잠겼다. 엄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난 어디쯤 온 것인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서 날개치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엄마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동백 꽃밭 곳곳에 다른 생명들의 허물이 널려있었다. 더럭 겁이 났다. 사방을 둘러봐도 혼자뿐이다. 빨아올린 입속의 단물이 몸속으로 완전히 물크러져 들어갈 때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바닷바람이 나를 밀어줄 때는 힘겨운 줄 모르고 숲 속을 날아다녔다. 그런데 어디서부터가 바다였고 숲이었을까. 생각이 돌지 않았다. 바람이 거꾸로 불면서 나의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내 날개치기가 느려진 뒤에야 비로소 내가 깊은 산속까지 날아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날개 치기를 계속하였지만 나의 몸을 부려 놓을 만한 안전한 장소는 찾지 못하였다. 미처 닿지 못한 그곳을 향해 갈래진 길 앞에서 날개가 휘청거렸다. 엄마 곁을 떠나와 홀로 날아오르는 일은 끊임없이 길을 고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삶이란 이런 것일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생의 언저리를 맴도는 것이 그나마 살아있음의 증거인가.
엄마의 품속 같았던 숲을 벗어나 나만의 길을 찾아 날아온 동안 산길은 평지인 듯 보이다가도 다가서면 가파른 언덕이었다. 고르고 골라서 날아오른 길은 늘 모습을 달리하며 날개치기를 부추겼다. 어딘가에 도달하면 길은 다시 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곤 하였다. 산 중턱에서 다른 나비 떼의 군무를 보았다. 그들의 날개치기가 산등성이에 무더기로 아롱졌다. 맞아! 엄마가 저기에 있을 거야. 힘이 쏟아놓았다. 나는 그곳을 향해 힘껏 날아올랐다. 나의 날개 치기는 빠르게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