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 훈련병의 첫 눈물
바야흐로 훈련소를 향한 거보를 내디딘 지금,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방향이 좀 다른데? 처음 입소할 때 보았던 정문 쪽으로 갈 줄 알았더니. 누구 하나 봐줄 사람도 없으니 상관없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앞사람의 머리까지 팔을 올리며 가야 하는데, 글씨나 깔짝대던 연약한 내 팔이 감당할 수나 있을까 몰라. 벌써 마비가 되는 것만 같아.
"와~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함성 소리! 길 양 옆으로 펼쳐진 숲과 훈련장에서 사격자세를 연마하는 모습들. 풋(썩소를 날리며). 저 정돈 약과지. 이미 교련시간에 익힌 기본 중에도 기본 아냐? 총검술, 제식훈련을 모두 마스터한 본 조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누워서 떡먹기나 마찬가진 걸.
그런데, 가는 길 양 옆에는 어김없이 침엽수가 심어져 있네. 마치 알래스카의 침엽수림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걸. 녹색 군복에 늘 푸른 나무라, 이건 정말 시적이군. 나무들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막사들. 호기심에 쳐다보는 검게 그을린 얼굴들. 그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더해지는 불안, 초조, 드릴, 서스펜스! 일사불란하게 발을 맞춰 걸은 결과 막사에 도착했어. 이어지는 순서는, 훈련소로 오는 동안의 사소한 잘못을 꼬투리 잡아 옷에 먼지 묻히기 작전(얼차려) 실시! 뒹굴뒹굴...
얼마동안의 몸풀기(?) 시간을 가진 후, 식순에 의해 임원진 - 사장(중대장) 아무개 대위, 이사(소대장) 뭐시기 중위, 부장(선임하사) 홍길동 하사, 과장(이하 조교들) 개구리 상병, 대리 잘생긴 일병, 사원 물당번 이병 등등 - 을 소개하고, 열대로 소대와 내무반 배정. 정말 군대는 줄(?)이군.
21시 정각.
식사, 약간의 휴식, 청소를 마치고 일석점호 시작. '관물 상태 불량'으로 전원 한 따까리. 상단에 발을 올리고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엎드려뻗쳐. 중력가속도에 몸무게가 더해져 얼굴로 피쏠림 현상이 벌어짐과 동시에, 양손에 고통이 밀려오는 날카로운 첫 경험을 했어.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중략)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처서 사라졌습니다."
- 「님의 침묵」/ 1926년 발간 / 지은이 한용운 -
내무실장의 워커발이 하늘을 가르고, 하이바에 가려진 두 눈이 빛날 때, 침상 위에서는 훈련병들의 곡소리 높더라.
"나 돌아갈래~!"
1991년 5월 5일(일).
어린이날이자 입소 후 처음 맞는 일요일 아침. 한국의 3대 종교 - 불교, 기독교, 천주교 - 에 한해서 종교활동이 보장된단다. 교회를 다니는 나로서는 잘된 일이지. 군가가 아닌 가스펠송을 부르며 연무대 교회로 행진. 그 맛이 색다르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중략)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 「실로암」 / 1981년 발매 / 작사,작곡 신상근, 노래 피아워십 -
군대는 어디서나 줄이야. 기상하자마자 점호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고, 훈련을 받으러 학과 출 장할 때도, 귀대할 때도, 밥 먹으러 오갈 때나, 심지어 식탁에 앉아서도 식기를 정렬해야 하니까. 그런데, 교회에 와서도 그 줄은 사라지지 않으니. 으휴~
그나저나 정말 크다. 예배당이 아무리 못해도 2천 명가량은 너끈히 수용할 정도로 어마어마 해. 아, 이 얼마 만에 들어 보는 찬양 소린지. 정말 편안해. 얼마나 편안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조는 녀석들이 수두룩 빽빽해. 찬양 인도하는 기간병이 새로 입소한 우리를 축하해 주네. 그런데 다음 주에 퇴소하는 녀석들이 있다는데 도대체 어떤 녀석들일까?
으잉? 우리 연대만 빼고 전부 다잖아. 환호성을 지르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며 사색이 될 수밖에. 곳곳에서 들리는 한숨소리. 주위를 둘러보니 들썩이는 어깨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훌쩍거림 속에서 나도 그만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었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믿음 가운데 성장시켜 주시고, 국방의 의무를 맡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훈련이 고되고 도망치고 싶은 유혹이 덮쳐 오더라도 꿋꿋이 맞설 수 있도록 하시며, 퇴소하는 그날까지 다치지 않게 도와주세요. 시련 가운데 연단하시는 당신의 뜻을 아오니, 어려움 속에서 제 믿음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아버지의 힘으로는 할 수 있으니, 이 기간 동안 훌륭한 십자가 군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오로지 당신만을 의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참, 오늘이 마침 어린이날인데, 아들을 군에 보내 놓고 얼마나 걱정하고 계실까? 부모님께 문안 편지라도 드려야겠어. 알고 보면 나도 효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