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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 Oct 03. 2024

공포의 쿵쿵따

연재소설 : 깜찍한 부조리 13화 - 공포의 쿵쿵따

늦은 저녁, 안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미라.

인주와 한주는 방 한가운데 장난감을 펼쳐놓고 만지고 있다.

혜진은 장난감 동요 반주기에서 나오는 동요 반주에 맞춰 앙증맞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 떼가 나온다, 악어 떼!


한 곡조의 동요가 끝나자 혜진은 버튼을 눌러 다음 곡을 부르기 시작한다.

감정에 심취되어 정말 진지하게 노래 부르는 혜진.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 ♬아이 참 재미있네”

노래 한 소절이 끝나고 간주가 이어진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인주가 혜진 앞에 놓인 동요 반주기로 다가간다.

노래의 다음 소절을 부르기 시작하는 혜진. 

“♪날 따라 해봐요 요렇게, ♬날 따라 해봐요 요렇게,..”

인주는 호기심에 동요 반주기의 버튼을 누른다.

노래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동요 노래 반주가 뚝 끊어진다.

“ ...♬날 따라 해봐요 요렇게, ♬아이 참...”

가사에 심취되어 노래를 한참 부르고 있는데 동요 반주가 끊긴다. 

황당하고 민망한 혜진, 

혜진의 한껏 고조되었던 감정이 주체 못 할 분노로 바뀐다.

범인은 인주, 혜진은 소리를 지른다.

“야- 아!”

혜진은 인주를 손으로 밀친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울기 시작하는 인주.

“으아아아앙”


미라가 안방으로 쫓아 들어와서 울고 있는 인주를 끌어안는다."

“인주야, 괜찮아, 괜찮아.”

혜진은 화가 난 표정으로 동요반주기를 미라에게 가리키며 말한다.

“인주가 이것 만져서 노래가 꺼졌어.”

인주를 달래면서 혜진을 높은 톤으로 나무라는 미라.

“그렇다고 인주를 밀면 어떻게 해. 엄마가 다 봤어. 너 그러면 돼? 안돼?”

그렇지만 혜진은 억울하다. 인주가 먼저 잘못했는데...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혜진, 혜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미라에게 말한다.

“엄마는 인주만 좋아하고…”

혜진을 나무라던 입장에서 혜진을 달래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는 미라.

서럽게 우는 혜진에게 미라는 한 옥타브 낮아진 톤으로 말한다.

“인주는 너보다 어리잖아. 그러니 엄마가 인주를 잘 돌봐야지.”

울먹이며 말하는 혜진,

“엄마는 인주하고만 놀아 주잖아.”

미라는 이제 변명하는 처지가 된다.

“엄마가 혜진이하고도 놀아줬잖아.”

오히려 미라를 몰아가는 혜진, 여전히 울먹이는 목소리.

“언제?”

“혜진이가 인주만 할 때 엄마가 혜진이랑 놀아 줬잖아? 날마다 업고 다닌 것 기억나? 안 나? 그때 옆집에 석현이도 다 봤는데.”

미라의 말에 혜진은 말문이 잠시 막혔다가 다른 것을 들고 나온다.

“엄마는 인주 맴매도 안 하잖아?”

“엄마가 인주를 왜 맴매 안 해? 인주가 TV를 바로 앞에서 보면 맴매하잖아.”

미라의 말에 말문이 막힌 혜진, 여전히 훌쩍거린다.

미라가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댄다. 

“오늘 아침에 인주 맴매하는 것 봤어? 안 봤어?”

전세가 다시 역전된다. 울먹이며 사실을 인정하는 혜진.

“봤어.”


그때 앉아 있던 한주가 일어나서 뒤뚱거리며 안방에서 나간다.

그 모습을 본 미라가 일어선다.

“하이구, 한주야, 그 사이에 어디로 또 도망가…”

미라가 한주를 잡으러 안방에서 나간다.



현관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는 현수.

현수가 현관 앞에 서 있는 한주를 보며 반갑게 말한다. 

“어, 한주, 아빠 기다렸어?”

한주를 잡으러 온 미라가 현수를 보며 말한다.

“그랬나 보네요, 언제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현수는 한주를 힘껏 끌어안으며 어른다.

“어쭈쭈쭈쭈우~.”


현수는 한주를 안고 안방을 쳐다본다. 울고 있는 혜진의 모습이 보인다.

“혜진이는 왜 우는데, 인주랑 싸웠어?”

“인주 밀치는 것을 보고 뭐라고 했더니, 저렇게 서럽게 우네요.”

현수는 웃으며 한주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현수는 훌쩍이는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이, 왜 울어? 인주랑 싸웠어?”

혜진은 대답 대신 서러운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상황이 우스운 현수, 그래도 진지하게 혜진을 달랜다.

“혜진이 이제 그만 울자.”

자기편이 생긴 혜진,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엄마, 미워.”

현수는 웃으며 혜진에게 말한다.

“아빠가 엄마 혼내 줄까?”

“아니, 인주 혼내줘.”

“인주가 혜진이 때렸어?”

그 말에 다시 모녀의 설전이 시작된다.

“혜진이가 인주 밀었잖아. 죄 없는 인주는 왜 또.”

미라에게 질 수 없는 혜진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강력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엄마 미워.”


현수가 웃으며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미라에게 건넨다.

“집에 오다가 샀어.”

“이게 뭔데요?”

“키위.”

미라가 혜진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머나, 아빠가 키위를 사 왔네. 어린이들 키위 먹을까요”


미라가 키위가 들은 봉지를 들고 안방에서 나가자 인주와 한주가 따라간다.

따라가고 싶지만, 자존심 때문에 머뭇거리는 혜진.

현수가 머뭇거리는 혜진에게 묻는다.

“혜진이는 키위 안 좋아해?”

이제 울음이 그친 혜진의 목소리.

“키위가 뭐야?”

“새콤하고 달달한 과일이야.”

호기심이 생기지만 자존심 때문에 차마 엄마에게 갈 수 없는 혜진.

현수는 머뭇거리는 혜진의 등을 밀며 안방에서 나가며 말한다.

“자, 키위 먹으러 갑시다.”



미라가 주방 바닥에 접시를 내려놓고 쪼그려 앉아 키위 껍질을 깎고 있고

인주와 한주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

현수는 혜진을 아이들 사이에  앉힌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미라는 껍질 깎은 키위를 접시에 놓자 한주가 그것을 집어 든다.

“잠시만, 이거 너무 커서 못 먹어, 엄마가 잘라줄게.”

미라는 한주의 손에서 깎은 키위를 빼앗아서 잘게 썬다.

키위 써는 것을 진지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모습.

미라는 키위 담은 접시를 혜진에게 건넨다.

“자, 방에 가서 먹읍시다.”


혜진이 키위 담은 접시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안방으로 향하고

미라는 인주와 한주를 몰고 그 뒤를 따라간다.



혜진이 키위 담은 접시를 안방 방바닥에 놓는다. 

미라가 몰고 온 인주와 한주가 접시 앞에 앉아 키위 조각을 손으로 집어 먹는다.

키위를 오물거리며 먹는 혜진.

“혜진아, 키위 맛있어?”

사이가 좋아진 모녀가 다정하게 말한다.

“응, 맛있어.”

사건의 당사자인 인주에게도 묻는다.

“아유, 한주도 잘 먹네, 인주도 맛있어?”

“응.”


아이들 각자가 키위를 손으로 집어 먹고 미라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휴일 저녁, 현수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방문이 열리고 혜진이 들어와서 현수의 무릎 위에 서슴없이 앉는다.

현수는 혜진의 당돌한 침입에 어이가 없어 웃는다.

“혜진이는 아빠 좋아?”

“응.”

“그러면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하는 약아빠진 혜진.

“둘 다 좋아.”

현수는 무릎에 앉은 혜진의 양 볼을 꼬집으며 흔든다. 


“아빠, 쿵쿵따 게임해.”

“아, TV에서 나온 그거? 끝말잇기 말이지?”

“응”

혜진은 구멍가게에서 사 온 손바닥만 한 책자를 보며 말한다.

“어떻게 하나 하면, 내가 가가멜하면 아빠가 멜로디하고, 또 내가 디디알하면 아빠는 알코올하고…”

현수가 중간에 혜진 말을 막으면서 말한다.

“알았어, 빨리하기나 해.”

혜진은 손에 쥔 손바닥만 한 책자를 현수가 볼 수 있게 책상 위에 놓는다.

그리고 혜진이 먼저 끝말잇기 게임을 시작한다.

“‘가’, ‘가’로 시작하겠습니다. 가가멜 쿵쿵따!”

앙증맞은 책을 보며 끝말잇기를 하는 현수.

“멜로디 쿵쿵따!”

그렇게 책을 보면서 혜진과 현수의 끝말잇기가 이어진다.

“디디알 쿵쿵따!”

“알코올 쿵쿵따!”

“올리브 쿵쿵따!”

‘브’자가 나오자 현수는 웃으면서 책도 안 보고 단어를 말한다.

부라자쿵쿵따!”

책에 없는 단어에 어리둥절한 혜진이 머뭇거린다.

현수는 당황하는 혜진 뒤에서 짓궂게 웃는다.

혜진은 책을 들고 현수에게 보이며 말한다.

“‘브’, ‘브’ 잖아.”

현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뻔뻔스럽게 말한다.

“그래, 브라자.”

현수는 헷갈려하는 혜진을 보며 말한다.

“너 브라자가 뭔지 알아?”

안다는 듯이 당당하게 대답하는 혜진.

“아이스크림이야.”

“아니야,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가 잘 알아.”

혜진이 현수에게 부탁하듯 말한다.

“‘브라보’라고 해~.”

“알았어. 브라보 쿵쿵따!”

그렇게 끝말잇기 게임이 다시 이어진다.

“보름달 쿵쿵따!”

“달맞이 쿵쿵따!”

“이발소 쿵쿵따!”

현수가 또 심술궂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소고기쿵쿵따!”

책에 없는 글자, 혜진은 고개를 뒤로 돌려 현수의 얼굴을 쳐다본다.

현수는 시치미 떼며 멀쩡한 표정으로 혜진을 같이 쳐다본다.

혜진이 다시 현수에게 부탁 조로 말한다.

“소나무라고 해.”

혜진의 부탁을 거부하는 현수.

“안 할래, 나는 ‘소고기’라고 할래.”

혜진이 어릿장을 부리며 부탁한다.

“으으으응~ ‘소나무’ 해.”

부탁을 받아주는 척하며 배신을 하는 현수.

“알았어, 그럼 ‘-’ 쿵쿵따.”

화가 난 혜진이 현수를 뒤돌아보며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소, 나. 무!”

현수가 웃으며 혜진의 뜻에 따른다.

“소나무 쿵쿵따.”

화가 난 혜진이 현수를 훈계하듯이 말한다.

“아빠 마음대로 하지 마, 여기 있는 그것대로 해.”

순순히 대답하는 현수.

“알았어.”

혜진이 다시 끝말잇기의 분위기를 살린다.

“무지개 쿵쿵따!”

“개그맨 쿵쿵따!”


그때 한주가 작은 방으로 들어오자 현수는 이때다 싶어 혜진을 무릎에서 내리고 한주를 끌어안는다.

“오호호, 한주 왔어요, 요 귀여운 것!”

혜진이 현수에게 말한다.

“아빠, 쿵쿵따 계속해.”

현수는 한주에게 눈을 맞추며 말한다.

“나중에 하자~.”     

현수가 한주를 안고 방에서 나가자 혜진도 현수를 따라 나간다.



이불이 펴진 안방.

미라는 교자상 위에 그림책을 펼쳐놓고 인주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무서운 호랑이가 꾀돌이 여우를 드디어 '확-'하고 잡았어요.”

인주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미라에게 묻는다.

“그래서?”

“그때 뚱뚱한 곰이 도망갔던 토끼와 사슴을 데리고 나타났어요.”

안방으로 현수가 인주를 안고 혜진과 함께 들어온다.

인주는 방으로 들어오는 현수를 보며 말한다.

“뚱뚱한 아빠 곰?”

미라가 말을 이어간다.

“호랑이가 곰을 보며 말했어요, ‘이런 미련한 곰탱이가 나타났군’.”

인주가 현수를 불쌍한 듯이 보며 말한다.

“곰탱이? 아빠가?”

졸지에 곰탱이가 되어버린 현수가 인주를 보며 웃는다.

이야기에 심취한 인주, 다시 미라를 보며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그래서 호랑이가 곰을 보고 도망을 갔어요.”

“그래서?”

미라가 인주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한다.

“그래서 끝~.”


미라의 말에 인주는 책장으로 가서 다른 동화책을 빼내서 들고 온다.

미라가 인주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깔아 놓은 요 위에 눕는다.

“이제 잠자는 시간. 어린이들 이제 잠자야 합니다.”

미라가 누워버리자 인주는 들고 온 동화책을 현수에게 건넨다.

현수는 건네받은 동화책을 인주에게 돌려주며 말한다.

“여기 고래 아줌마에게 읽어 달라고 해.”


미라는 웃으며 베고 있던 베개를 현수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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