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게,
나에게는 평생을 사랑할 두 남자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스물아홉 살 차이가 나는데도, 나는 이들을 비슷한 총량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 두 남자는 바로, 아빠와 남동생이다.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딸 바보’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태어난 지 육 개월 만에 처음 한 말은 “아빠”였다.
내가 두 살 때, 아빠는 일 때문에 한 달에 한두 번만 집에 들르셨다. 그때의 나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때였는데, 뭘 알긴 아는지 아빠의 사진을 보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나도 그 순간부터 “아빠 바보”가 된 셈이다.
중학교 때, 방을 치우지 않아 엄마에게 된통 혼나고 울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빠는 내가 숨넘어갈 듯 우니까, 딸이 어떻게 될까 싶어 “물 먼저 마시자”며 쩔쩔매셨다고 한다. 중학생이면 꽤 큰 자녀인데도 까딱하면 부서질까 어화둥둥하신 거다. 그러나 사랑하는 만큼 엄할 땐 엄하셔서,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도 아빠가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아빠는 주로 몸으로 놀아주셨다. 나를 들고, 업고, 던지고. 중고등학생 때까지도 아빠랑 눈만 마주치면 그렇게나 장난을 쳤다. (사실 현재까지도 종종 그런다.) 나에게 아빠는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하늘을 날고 싶다면, 번쩍 들어 올려 정말 날아오르게 만들어 주셨다. 그러면서 마음의 지지 또한 깊게 해 주셨다. 성인이 되어서 꿈을 찾겠다고 방황하던 그 모든 순간을 함께 버텨주셨다. 그래서인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아빠다. 아빠의 넘치는 사랑은 지금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우상이자 힘이 된다.
아빠는 조용하고 묵직한 성격의 소유자라 우리 집에서는 ‘츤데레 아빠’로 통한다. 최근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도 그랬다. 아빠에게 “아빠, 나 글 쓰는 플랫폼에 지원해 보려고. 합격되면 작가로 활동할 수 있대.”라고 전하자, 아빠는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가셨다. 하지만 나중에 듣기로는 엄마가 합격 소식을 전하자 “그거 어떻게 보는 거냐?”라며 다급히 물으셨다고 한다. 조용히 구독을 누르신 아빠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간간히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신다. 그 라이킷 한 번이 백개의 라이킷보다 더 큰 응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아빠를 떠올리면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일평생 자식을 위해 맘 편히 쉬어간 날이 없을 당신의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사랑이 넘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남동생은 나와 여섯 살 차이가 나지만, 나이차이가 무색하게도 꽤 어른스럽고 다정한 친구다. 이 다정함이 특히 빛을 발했던 순간이 있었다. 4년 전, 내가 집 근처 술집에서 과음한 뒤, 잠시 쉰다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버린 날이었다.
그때 연락이 닿지 않자 친구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기 너머로 술 냄새가 진동하고 인사불성이 된 나를 위해 동생에게 SOS를 쳤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눈을 뜨자마자 동생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동생은 어릴 적 운동을 해서 다부진 몸과 183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터라, 나를 업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집에 가는 길에는 높은 오르막길이 있어서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한 번도 나를 내려놓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본 이야기로는 등에 업힌 내가 연신 “사랑해”를 외치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때 동생의 표정을 상상하면, 한 편의 시트콤이 따로 없지 싶다.
이 에피소드는 나에게 20대 초반의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시간이 지나 한 번씩 떠올려보면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고마운 일이다. 동생은 나에게 있어서 피를 나눈 유일한 형제이자, 가장 든든한 친구이다.
지금은 군대에서 열심히 나라를 지키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면 안쓰럽기도, 멋지기도 하다. 하루빨리 제대하여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지 못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날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여러분은 가족과의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요?
[국어사전] 사랑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