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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9시간전

소설 <자생화> 04

다은은 이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모든 걸 외면한 채 곧장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의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자 따뜻한 분위기가 그녀를 감쌌다. 그러나, 마음속 불안한 마음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무언가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그 감정의 실체를 직면할 용기는 없었다.


그녀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서둘러 직원들과 회의를 시작했다. 주로 확장이전을 앞둔 시점이라 인원 충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구인공고를 올리고, 며칠 동안 면접을 봤다.


면접자 중 한 사람은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30대 중반 여성이었다. 여성은 자신이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를 강조하며 읽은 책들을 자랑하듯 풀어놓았다. 그러더니 대뜸 자식 이야기를 꺼내며 애가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큼큼, 목을 가다듬어 불편한 내색을 비추었지만, 여성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서점을 운영하니 자녀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 좋겠다고 하면서- 아마도 여성은 합격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실언을 막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여성이 나가자마자 이력서를 찢어버렸다. 이외에도 휴학 중에 잠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을 하고 싶어 한다거나, 면접시간을 제때 맞춰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확장이전이 며칠 남은 시점, 20대 후반즈음의 키 큰 남자가 서점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왔다. 당연히 손님으로 보였던 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유온서점입니다. 처음 방문하셨나요?”


남자는 낮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 보기로 한 우도현입니다.”


그제야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확장이전 공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터라 면접이 있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서점 구석자리에 앉아 면접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력서에 적힌 반듯한 글씨체를 훑어보며 형식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그녀는 이력서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아닌, 왜 서점에서 일하고 싶은지가 궁금했다. 이 질문에 그는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음.. 사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그래서인지 이십 대 대부분을 여행을 하며 자유롭게 보냈던 것 같네요. 그러다 모든 게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부모님에게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이 들었거든요. 그때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책을 한 권 읽게 됐어요.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기 계발 서적이었는데, 읽고 나니 저도 제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보고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책이 좋아졌어요. 책이 가득한 공간에 있으면, 제게 주어진 문제를 언제든 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꼭 서점을 차리고 싶어 졌죠. 솔직히 배우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서점에 대해서요. “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뱉어내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녀는 마음이 아플 때마다 무작정 책을 읽어냈던 예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목에 난 흉터가 저릿함을 느꼈던 그녀는, 스카프를 살짝 느슨하게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일 해요, 같이.” 그러나 남자의 반응은 어쩐지 시원찮았다. 망설이던 남자는 우물쭈물하더니 질문을 건넸다.


“혹시.. 숙식제공은 어려울까요? 아니, 숙. 잘 곳만 마련해 주시면.. 어떻게 안될까요? “


그녀는 심히 당황스러웠으나 더 이상 이유는 묻지 않았다. 대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 멀쩡해 보이는 남자가 집이 없다는 얘기인데, 문득 전세 사기를 당했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잘 곳이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현재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녀는 그런 그의 사정과는 별개로 꼭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의 진심 어린 대답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고, 무엇보다 세를 내놓은 옥탑방이 마침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음.. 저희 집 옥탑방이라도 괜찮으시면, 같이 일해봐요.”라고 답하며 그를 자리에서 합격시켰다. 그러나 곧 자신이 무엇에 홀려 이런 결정을 했는지 후회가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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