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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19. 2024

소설 <자생화> 02

“응애-”


분명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찰나의 순간에 지원의 문자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를 살라달라는 말. 그 간절한 요청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그녀는 남자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재차 확인한 후 울음소리를 따라갔다.


낡고 떨어진 문고리가 달랑거리는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세면대 위에 위태롭게 얹힌 갓난아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기의 작고 연약한 모습은 그녀의 심장을 저릿하게 했다. 급히 휴대폰을 집어 들어 119를 누르려했지만, 그녀의 엄지손가락은 차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해가 뜨고, 아기가 계속 울어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결단을 내린 그녀는 울음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망설임을 뒤로하고 아기를 슬며시 안아 들었다. 거짓말처럼 아기는 곧 잠잠해졌다.


그녀는 일단 이 아기를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이곳에 와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지원은 어디로 갔는지, 남자는 정말 죽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로 토악질이 날 것만 같았다. 구역질이 나오려는 고통을 간신히 참으며, 그녀는 아기를 안은 채 자신의 흔적을 서둘러 지워나갔다. 남자의 죽음은 그녀의 삶에서 지워야 할 과거가 되어야 했다.




“내가 똑바로 앉아서 먹으라고 했잖아! 네 살이면 이제 알아서 할 때도 되지 않았니?”


그녀는 아이와 손을 닿아 더럽다는 듯 싱크대로 달려가 벅벅 닦고는, 알코올 세정제로 한번 더 소독한 후에야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마침내 식사를 마친 그녀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 사이 무정은 익숙한 듯 그릇을 설거지 통에 넣고 어린이집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어린이집 가방까지도 제 손으로 꾸렸다. 네 살짜리 아이가 하기에는 어려운 일들도 척척 해내는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아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 밖을 나서는 두 모녀의 모습은 상당히 상반되었다. 두툼한 베이지색 코트에 갈색 셋업, 고급스러운 스카프에 빛나는 부츠까지 완벽하게 갖춰 입은 그녀와 달리 어린이집에서 나눠준 유니폼에 제 품보다 큰 패딩을 걸치고 대충 묶어진 머리를 한 아이의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그녀는 선생님의 안부를 물으며 다정히 인사를 한 뒤 아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차로 향했다.


차에 탄 그녀는 운전석 보조거울을 보며 스카프를 벗었다. 새하얀 목덜미에는 끔찍한 흉터가 있었다. 그날의 흔적이었다. 오늘따라 쿡쿡 쑤시는 통증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아- 그러자 차가운 냉기로 가득 찬 공기 속에서 입김이 불어 나왔다. 마치 안개가 자욱했던 그날의 날씨처럼 말이다. 핸들을 부여잡은 두 손이 자동차 엔진과 함께 떨려왔다.


그녀는 생각에 잠기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랫입술이 퉁퉁 부어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내 턱에 힘을 뺀 그녀는 스카프를 다시 목에 두르고 운전대를 잡았다. 월요일 아침이란 으레 그렇듯 온 세상 차들이 전부 밖에 나온 듯하다. 줄지어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빼곡했다.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 도착한 곳은 어느 한 독립서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면을 채운 책들이 보였다. 한쪽에는 작은 카페가 자리해 있고, 벽을 따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녀는 평소의 목소리보다 한 톤 올려 반갑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때, 직원 한 명이 다급히 휴지를 들고 달려오며 말했다.


“사장님! 입술에 피! 또 입술 뜯으신 거예요?”


그녀는 아까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었나 싶어 몰래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에서 다시 용모를 가다듬고 업무를 시작했다. 손님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일은 사장인 그녀가 직접 했다. 그녀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보다 밝고 따뜻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무정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귀찮은 듯 억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정 어머니, 지금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원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왔다. 긴박한 상황임이 틀림없는데도, ‘내 이름은 무정 어머니가 아니라, 심다은인데.‘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그녀였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원장은  무정이 다른 아이를 연필로 찔러 크게 다친 상황이니 와주셔야 한다고 재차 전했다. 그녀는 순간 드는 섬뜩한 마음을 감추고 서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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