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원 Oct 19. 2024

소설 <자생화> 01

아무래도 새벽 시간은 고요하기 그지없다. 길거리는 어둠에 잠기고, 가로등에 간신히 매달린 하루살이들만이 맴돌고 있다. 사람들의 부재로 거리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켜버렸다. 음산한 침묵을 깨뜨리는 고양이 울음소리 사이로, 그녀는 달이라도 쫓는 듯 다급한 발걸음으로 뛰어왔다. 찬 바람에 흩날리는 긴 갈색 머리카락과 검은 캡모자, 늘어난 긴팔 티셔츠와 보풀이 잔뜩 낀 반바지 차림으로, 22살의 나이에 걸맞은 모습이지만 그 순간 깊게 파인 인상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택시를 탄 그녀는, 텅 빈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택시 기사의 오지랖 넓은 질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그녀의 시선은 휴대폰 속 지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든 신경이 그 작은 화면에 집중된 듯, 주변의 소음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기사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라디오 소리를 키웠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외곽의 재개발 구역. 골목 사이의 판잣집들을 보고 있자니 서늘함이 밀려왔다. 그녀는 발이 닿자마자 낯선 공간에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발이 멈춘 곳은 어느 집 앞, 우편물 속 이름을 확인하고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끼익. 잠겨 있지 않음을 깨닫고 문턱을 넘었다.


“계세요? 지원아, 나 왔어.”


현관문을 잡아당기자, 술과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찬 집이 드러났다. 먹다 만 컵라면들과 술병들 사이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해 벽에 기대앉아 있었고, 그녀의 인기척에 반쯤 뜬 눈을 깜빡였다.


“지원아.. 지원아 어디 갔었어!”


그는 지원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더니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손길은 옷속을 파고 들었다. 놀란 그녀는 몸부림쳤지만, 젊은 남성의 힘을 뚫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한 번만 더 집 나가면 벌 준다고 했지!“


그녀는 자신이 지원이 아님을 강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계속된 실랑이 속에서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격분한 그는 소주병을 바닥에 깨뜨리고는, 깨진 유리조각으로 그녀의 목을 깊게 짓누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닥쳐. 죽고 싶지 않으면.”


그녀의 티셔츠 목주름 사이로 빨간 핏물이 스며들었다. 필사적으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의 한 손은 머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은 여전히 목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곧이어 두 다리가 자유로움을 깨달은 그녀는 그의 배를 발로 힘껏 찼다. 정적이 찾아왔다. 벽에 머리를 부딪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요한 공간에서 그녀의 심장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혼란 속에 빠진 그녀는 이곳에 왜 왔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때, 어디선가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날카롭게 스치고 있었다.

이전 01화 소설 <자생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