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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19. 2024

소설 <자생화> 프롤로그

1

“오늘 아침, 한 남성이 알코올 중독으로 보이는 상태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사인은 뇌출혈로 확인되었으며, 사건은 사고사로 처리될 예정입니다. 관계 당국은 사망 원인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이 사건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차분한 앵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2

차가 미끄러졌다. 그 순간, 세상이 정지한 듯했다. 엄마와 아빠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날의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과거의 그 밤이, 그 선택이, 이 순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기억을 끝없이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3

“사고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목격자들은 있었나요?”


질문이 던져지자, 나는 과거의 밤을 떠올렸다.


“아니요, 아무도 없었어요.”


내가 그날 밤, 고독하게 선택했던 길과 같았다.


4

“사고 당시의 상황은 잘 설명하셨죠. 필요한 서류는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험금 청구서에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조사관이 서류를 건네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를 받았다. 보험금의 액수는 그저 숫자일 뿐이었다.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정지했던 그 순간만이 떠올랐다.


5

아이가 우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잠에서 깼다. 나는 베개를 들어 아이의 얼굴을 지그시 눌렀다. 희미해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날의 기억도 잠시나마 흐릿해지는 듯했다. 이 아이를 데려온 게 잘못이었나? 엄마가 너무도 보고 싶은 밤이다.


6

그날, 나는 운이 나빴다. 시험을 망쳤고, 버스를 놓쳤고, 아르바이트에 지각했다.


7

휴대폰을 열어 지원의 문자를 곱씹었다. 아이를 살려달라는 말과 함께 주소를 보낸 내용이었다. 왜 하필 내게 문자를 보냈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원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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