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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19. 2024

소설 <자생화> 02

“내가 똑바로 앉아서 먹으라고 했잖아! 네 살이면 이제 알아서 할 때도 되지 않았니?”


그녀는 아이와 손을 닿아 더럽다는 듯 싱크대로 달려가 벅벅 닦고는, 알코올 세정제로 한번 더 소독한 후에야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마침내 식사를 마친 그녀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그 사이 무정은 익숙한 듯 그릇을 설거지 통에 넣고 어린이집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등원 가방까지도 제 손으로 꾸렸다. 네 살짜리 아이가 하기에는 어려운 일들도 척척 해내는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아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 밖을 나서는 두 모녀의 모습은 뚜렷하게 대조되었다. 두툼한 베이지색 코트에 갈색 셋업, 고급스러운 스카프와 빛나는 부츠로 완벽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가지런히 다듬어진 단발머리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면, 어린이집에서 나눠준 유니폼에 제 품보다 큰 패딩을 걸친 아이는 대충 묶인 머리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선생님의 안부를 물으며 다정하게 인사한 뒤, 아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장 차로 향했다.


차에 탄 그녀는 운전석 보조 거울을 보며 스카프를 벗었다. 새하얀 목덜미에 선명한 흉터가 드러났다. 그날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며 흉터가 쿡쿡 쑤셨다. 오늘따라 통증이 더욱 심해져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입김이 퍼져나갔다. 마치 안개가 자욱했던 그날의 날씨를 떠올리게 했다. 핸들을 부여잡은 손이 자동차 엔진과 함께 떨려왔다.


그녀는 생각에 잠길 때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로 인해 아랫입술이 퉁퉁 부어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내 턱에 힘을 뺀 그녀는 스카프를 다시 목에 두르고 운전대를 잡았다. 월요일 아침이란 으레 그렇듯 온 세상 차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줄지어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이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빼곡했다.


복잡한 마음을 누르고 도착한 곳은 어느 한 독립서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드 빛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이 보였다. 한쪽에는 작은 카페가 자리해 있고, 벽을 따라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녀는 평소의 목소리보다 한 톤 올려 반갑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때, 직원 한 명이 다급히 휴지를 들고 달려오며 말했다.


“사장님! 입술에 피! 또 입술 뜯으신 거예요?”


그녀는 아까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었나 싶어 몰래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에서 다시 용모를 가다듬고 업무를 시작했다. 손님들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일은 사장인 그녀가 직접 했다. 그녀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보다 밝고 따뜻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무정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귀찮은 듯 억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정 어머니, 지금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원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내 이름은 무정이 엄마가 아니라, 심다은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이 흐르자, 원장은 무정이 다른 아이를 연필로 찔러 큰 부상을 입혔다며 다급히 덧붙였다. 그 순간, 섬뜩한 불안이 그녀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한 그녀는 무정과 마주했다. 무정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상담실 한쪽에 구겨앉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님,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아서 방금 응급실에서 퇴원했다고 연락받았고요. 다친 아이가 할머니랑 살아서.. 일단 부모님과 연락을 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나저나 왜 그랬는지 물어도 무정이가 답이 없네요. 무정이도 오늘은 그만 집에 가서 쉬게 해 주세요. “


원장은 피곤한 일을 처리하듯 서둘러 무정을 데려가라고 설명했다. 원장의 목소리에는 불편함이 묻어 나왔고, 마치 짐을 덜어내려는 듯한 급한 어조가 느껴졌다.


그녀는 터질 듯한 머리 대신 운전대를 부여잡고, 집으로 향하며 물었다.


“너 왜 그랬니? “


“…”


“왜 그랬냐고 묻잖아!”


분노 섞인 그녀의 질문에도 무정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중얼거렸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


날카로운 그녀의 말에 뻗뻗했던 무정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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