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은 첫 출근을 앞둔 주말, 옥탑방에 입주했다. 이름만 옥탑일 뿐, 계단이 높지 않아 다행이었다. 짐을 풀고는, 다은에게 줄 화분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나 곧 계단 맨 아래에 앉아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해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잠깐만…”
아이는 돌아보더니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도현이 이상하게 생각하자, 아이는 픽 하고 코웃음을 치며 비켜주었다. 도현은 의아한 마음으로 아이를 지나쳐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다은이 안전고리를 걸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어.. 맞다. 오늘 이사하시는 날이죠. 불편한 점 있으세요?”
그는 문 사이로 화분을 건네며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다고 했다. 그녀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감사해요. 이렇게 찾아오시기 번거로우실 텐데.. 앞으로는 서점에서.. 아, 아니면 연락을 먼저.. 아무래도 불편하실 테니까..”
그녀의 배려처럼 보이는 말속에 불안함이 묻어났다. 도현은 면접 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더듬거리는 말투와 불안해 보이는 그녀가 낯설게 느껴졌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왜인지 자꾸 마음이 심란했다. 그 아이는 누구였고, 다은이 왜 불안해 보였는지에 대해 고민하다 일찍 잠이 들었다.
그 시각, 다은은 집에 돌아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걱정에 빠졌다. 14년 동안 그녀의 집을 아는 남자는 없었다. 전자제품이 고장 나도 남자 직원이라면 부르지 않았고, 대부분 혼자 해결했다. 그런 그녀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현을 윗집에 데려다 앉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무정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정은 계단 위쪽, 정확히 옥탑방을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무정의 뒤통수에 한마디를 남겼다.
“지 아빠 닮아서 음산하기는…”
여름밤의 공기는 따뜻했지만 무정에게 날아간 말은 차가운 얼음장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다은은 전날 밤 생각에 잠겨 늦게 잠든 바람에 너무도 피곤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점에 도착한 그녀는 새롭게 바뀐 공간을 보며 피곤은 잠시 잊고 뿌듯함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새로운 매장 시스템으로 직원들의 실수가 잦아져 점점 더 피로해졌다.
가장 바쁜 점심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휴식 시간이 생긴 그녀는 잠시 창고에 앉아 쪽잠을 잤다. 업무시간이 되어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도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약국에서 구매한듯한 고급스러운 피로회복제를 건네며 말했다.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쉬는 시간에 사 왔어요. 드시면 좀 나을 거예요. 아, 그리고 어제는 연락 없이 찾아가서 죄송했습니다. 제 마음이 섣불렀나 봐요.”
그녀는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귀가 멍해졌다.
그는 피로회복제를 받아 들고 말없이 있는 그녀를 보며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
“아, 혹시 이것도 부담스러우실까요? 전 그냥 사장님 안색이 너무 안 좋으셔서..”
도현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자 그녀는 순간 흐려졌던 정신이 맑아졌다. 감사의 말을 짧게 남긴 후,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