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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21. 2024

소설 <자생화> 06

오늘은 도현의 입사기념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직원들은 들떠서 마감작업을 서둘렀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겨서 회식을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며 카드를 건네주고 곧장 퇴근했다. 직원들은 의아했다. 단기아르바이트생이 끝나는 날 마저 회식을 핑계로 고기를 사주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회식을 미루는 게 아닌 참석을 하지 않는다니.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서점을 나가자, 직원들은 하나둘씩 입을 모아 정말 큰일이 생긴 것이 아니냐며 걱정했다.


도현을 포함한 매니저 승우, 우현, 막내 서원까지 총 네 명의 직원들은 허름한 뒷고기집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서원이 입을 삐쭉 내밀며 투덜거렸다.


“오늘은 소고기 좀 먹는 줄 알았더니!”


나머지 직원들은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서원을 야유하며 나무랐다. 회식 자리가 무르익자 도현은 궁금했던 것을 하나둘 묻기 시작했다.


“모두들 사장님과 사이가 정말 좋으신 것 같아요.”


“그럼요. 우리 사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저는 유온서점에 뼈를 묻을 거예요. 도현 씨도 사장님께 도움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이런 사장님은 정말 없습니다! 그러니 잘해봐요!”


우현이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화기애애한 덕담이 오가는 동안 도현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장님은 일찍 결혼하셔서 서점도 운영하시고, 여러모로 대단한 분이신 것 같아요.”


“사장님? 결혼 안 하셨는데? 연애하시는 것도 본 적 없는 것 같아, 그치?”


매니저 승우가 답하자, 나머지 직원들은 합이라도 맞춘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혹시 애 때문에?”


우현이 목소리를 급격히 낮추며 물었다.


“근데.. 그 애도 사장님 애가 아니라는 말이 있어.”


서원이 비밀스럽게 귓속말로 덧붙였다.


그러자 승우가 서원의 입을 틀어막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른 화제로 말을 이어갔다. 도현은 다은에 대한 이야기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식이 끝난 후, 도현은 아쉬움이 남는 마음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계속해서 다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녀가 불안해 보였던 이유와 관련 지어 곱씹었다.




다은은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을 무작정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뒤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따라오고, 그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골목의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그녀는 급히 쓰레기 더미에 몸을 숨겼다. 호흡을 고를 새도 없이 숨을 죽이는 사이, 아기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악을 쓰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귀를 찢는다. 두려움이 그녀의 가슴을 조여 오고, 압박감이 목을 짓누른다. 호흡이 가빠지자 눈앞이 흐려졌다. 그녀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덮치며 기절했다.


다시 깨어난 곳은 14년 전 사고가 일어났던 한 칸짜리 방이었다. 목덜미에서는 피가 홍수처럼 흐르고, 일그러진 아기의 얼굴이 시선에 들어온다. 아기의 양쪽 눈동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있고, 비정상적으로 올라간 입꼬리에서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퍼진다. 그때, 초록색 유리조각이 그녀의 눈을 향해 날아왔다.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 그녀는 호흡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젠장, 또 그 꿈이네…”


그녀는 자주 같은 악몽을 꿨다. 그림자들에게 쫓기다 다시 그 방에 갇히는 꿈. 서점 일에 몰두하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아픔은 여전히 꿈으로 찾아왔다. 악몽을 꾸고 나면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현관문을 열며 밖으로 나서자,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도현이 싱그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녀는 간단히 화답하고, 도현을 앞서 대문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도현은 그녀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내 피곤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도 컨디션이 별로신가 보다’하고 넘겼다. 최근, 도현은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체한 듯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사장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곧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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