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은 모처럼 쉬는 날임에도 일찍 눈을 떴다. 서점 확장 이전 후 제대로 쉬지 못한 탓에 그녀의 신경은 작은 자극에도 날카로워졌다. 사소한 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작은 움직임에도 심장이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가자, 텅 빈 집의 고요함이 그녀를 감쌌다. 요즘 무정은 다은이 잠에서 깨기 전에 집을 나가고, 돌아와서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큰 집이 필요하지 않았다. 최대한 무정과의 생활 반경을 다르게 두고자 이 집을 샀다. 그녀의 집은 거실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두 개씩이었다. 각 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어 굳이 거실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 심지어 방마다 작은 냉장고도 있었다. 이는 자신과 되도록 마주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무정의 방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정의 방이 꼭 닫혀 있지 않아서인지 바람결에 문이 슬쩍 열렸다. 틈 사이로 본 무정의 방은 깨끗했으나, 어딘가 음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무정의 방을 곧장 닫아버리고는, 화장실에 달려가 문고리에 닿은 손을 급히 씻어냈다. 쏟아지는 세면대 물줄기 소리에 잠긴 그녀는 낮게 읊조렸다.
“지원아, 미안해. 그런데 왜 하필 나였어…”
그녀는 그날 밤의 남자와 꼭 닮은 무정을 볼 때마다 과거에 멈춰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정의 싸한 구석도 싫었다. 네 살 때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다치게 한 사건 이후로는 눈에 띄는 행동이 없었지만, 여전히 한결같은 표정과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몸에 가시가 돋은 듯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지원의 문자가 아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막연히 상상하다가, 금세 고개를 저었다.
다은은 쉬는 날 꼭 하는 일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서점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가 사는 지역에는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부터 종종 들리던 ‘월광책방’이 있었고, 그곳의 사장님은 60대가 된 노인으로, 그녀가 올 때마다 엄마처럼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다은은 당연하다는 듯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음료 세트를 사들고 서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딸랑-’
“사장님! 저 왔어요.”
책방 한구석에 자리한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비녀를 꽂은 채 돋보기안경을 쓴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인사하자, 노인은 밝은 얼굴로 맞이했다.
“왜 또 이런 걸 사 왔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표정은 누구보다 인자했다. 그런 노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책방을 가득 채웠다. 그때, 또다시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녀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이 서점을 알게 된 이후로 자신 외의 손님을 본 적이 없기에 호기심이 앞섰다. 어두운 서점 조명 아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큰 키와 체격으로 보아 남성임을 직감했다.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