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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전거 04화

혜주

<4>

by book within

기억에 남아버리는 꿈을 겪은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알람을 끈 뒤, 눈을 반쯤 뜬 채 방금까지 겪은 꿈을 떠올렸다. 기억나는 대로 나만의 기록을 남겼다. 결혼식 이후, 계속해서 반복되는 무자비한 꿈들의 이유를 찾기 위해 생긴 습관이었다. 덕분에 카카오톡의 ‘나에게’ 메시지함에는 몇 줄의 말풍선들이 쌓여, 나만의 작은 수필집이 되어 있었다.


씻고 나와 옷을 입기 전, 날씨를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옷차림은 참을 수 없었다. 선선해진 날씨를 보며 자전거가 떠올랐다. 큰맘 먹고 데려온 전기 자전거는 최근의 꿈들과 함께 내게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출근길부터 복잡한 생각을 날려버리고, 하루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고 싶었다. 페달을 밟으며 회사로 향했다. 속도를 내야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페달을 밟을수록 자전거의 힘이 발목과 다리에 실리며 균형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여전히 무거웠다. 긴장된 몸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자유롭게 달리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머릿속 얽매인 생각을 풀어내기 바빴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손잡이에 거치된 핸드폰의 화면이 켜졌다. 유일하게 연락하는 대학 동기의 메시지였다.


“혜주 얘기 들었어? 이번 주말에 서울로 이사했대”


혼자 의미 없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글자들이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혜주.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고 있는 기억이다. 끝내 놓아 버린 관계, 스스로 정리 못하고 숨어있었던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났다. 결혼식에서도 애써 무시했는데 진짜 도와주지를 않네.


불편한 마음은 자전거에 대한 화풀이로 변했다. 의도적으로 숨을 가쁘게 쉬며 페달을 거칠게 밟았다. 회사 건물이 가까워지는 동안 의도적으로 미친 듯이 숨을 뱉어냈지만 혜주의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좁은 공간 속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의 기척에 숨이 얕아지고 어깨가 조여왔다.


몸도 위기를 느낀 듯, 무의식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던 순간, 오리발을 차고 물살을 헤쳤던, 골망을 흔들며 환호를 받던 기억이 겹쳐 올랐다. 꿈에서만큼은 온몸이 가볍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 꿈에는 늘 혜주가 있었다. 관중석 한편에서, 혹은 술자리의 한쪽 구석에서. 그녀는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자유로웠던 순간조차 그녀의 존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국 꿈도 현실도, 어느 쪽도 온전히 내 편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갈수록 답답함은 가슴을 죄어왔고, 내리기 직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사무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현실일까, 꿈일까. 그 어디에도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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