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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딸이 거나 못된 년이거나

질풍노도의 시기

by 이지은

나는 아주 순한 아이였다.

슈퍼 앞을 지나가면서도 뭘 사달라는 일이 없었고,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엄마가 "다음에 사줄게" 하면 "응" 하며 떼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애가 어디 있냐고?

내가 그랬다.


과자를 하나 들려 보내면 친구에게 봉지 째 주고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나도 하나만 주라.." 하면서 얻어먹는 순둥이. 허허 바보 아니고 순둥이 맞다. 순.둥.이!!


이런 딸이면 10명도 키우겠다고?

자자 끝까지 들어보시기를.


그렇게 착했던 내가 사춘기가 돼서는 남자 친구 문제로 엄마와 몸싸움까지 벌였으니!

착한 딸에서 호로자식으로의 대반전!

유주얼 서스펙트가 따로 없지?

(순둥이가 범인이야!)


사실 나는 순한 아이가 아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커서도 한동안 문방구나 슈퍼에 가면 정신을 못 차렸다.


나는 안다.

"다음에.."라는 말은 "안돼"라는 뜻임을.

엄마의 작은 표정 변화 만으로도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를 이미 다 알고 있었을 뿐이다.


난 순한 아이가 아니라 순한척하는 겁먹은 아이였을 뿐이다.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다 나눠주는 외로운 아이였다.


그런 나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은 "착하다. 순하다" 했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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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할 수밖에 없던 나는 자라면서 억울함 덩어리 그 자체가 되어갔다.

참고 눌렀던 것들이 어디 가지 않고 나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였다.

부당한 대우에 과하게 분노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너무 외로웠기에 또래 친구들과 남자 친구에게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점점 변하는 딸이 걱정된 엄마는 어느 날 내 어깨를 잡고 흔들며 외쳤다.

"정신 차려!!"


난 엄마를 침대로 밀쳐버렸다.


그때부터 우린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두며 지냈다.

그리고는 괜찮은척 두꺼운 가면을 썼다.

할 말만 하고 서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우리는 둘 다 참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두 여자가 더 더 외로워지는 길을 걸어갔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너무 많이 변해버린 아이 때문에 당황하는 부모님들이 많을 것이다.

너무 착한 아이였는데 갑자기 이상해졌다고..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버렸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같은 아이다.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아이가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린 그 아이조차도

여전히 억울함과 외로움에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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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엄마와 싸울 때 행복한 아이는 없다.


엄마들은 그런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아줘야 한다.

엄마 말고 그 마음을 누가 알아주나?

착한 딸이던지 나쁜 년이던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엄마들의 속마음은 누가 알아주냐고?

그건 내가 알아줄게.

고생 많이 했다고.

당신도 정말 수고 많이 했다고..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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