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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받지 못한 첫 생리

첫 생리와 질염

by 이지은

첫 생리를 하던 날 학교에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복통을 몇 시간을 견뎠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배 아파. 이상해... 이거 피야?"


엄마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벌써 시작이야?! 에휴~"


첫 생리에 부모님이 파티를 열어준 사람이 존재한다는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도 그런 신비로운 전설을 들었는가? 유니콘을 타고 출근할 것만 같은 그런 머나먼 동화속 세계의 이야기를 말이다.


생리는 어쩌면 자궁과의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내 몸속에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궁이

"다 됐다! 까꿍! 나 요기 있었지롱!" 하는 날인 거다.

그런 중요한 날 자궁과 나는 파티는커녕 눈칫밥만 한~ 사발을 먹었다.

발육이 너무 빨라서 그랬을까? 생리대가 너무 비싸서 그랬을까? 여하튼 자궁과의 첫 만남은 영 좋지 않게 출발했다.


게다가 이 녀석과는 매달 정기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어느샌가 생리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했다.

'또 시작이야. 벌써 시작이야! 에휴~'



밤이 되면 잠을 자듯이 건강한 처자라면 매달 당연히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를 온 맘을 다해 저항했다. 생리불순과 질염을 달고 산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서히 악화되던 질염은 결국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간지러워 자다가도 일어나 씻을정도로 심해졌다.


미친 듯이 자신을 긁어대는 강아지를 본 적이 있는가?

난 그 녀석들 마음을 안다.

차라리 피가 철철 나지.

미쳐 버릴 정도로 힘든 것이 간지러움이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치료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내가 더럽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 같았다.

그냥 덮어놓고 잊고 살면서 어떻게든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며 혼자 이래저래 버티며 수년을 보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출산 계획을 가지면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졌다.

내 자궁에서 자라고 태어날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진 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염증으로 샤워시킬수는 없지 않은가.


부끄럽지만 병원을 찾아가 내 아픈 곳을 다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의외로 담백하게 진료하시고 주사도 놔주시고 보라색 약도 발라주시고 먹는 약도 처방해 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하루에도 비슷한 진료를 수없이 하실 텐데 나를 굳이 특별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몇 년을 끌고 온 질염이 허무하게도 단 몇 주 만에 치료되었다.


나는 나를 너무 돌보지 못했다. 특히 부인과 질병은 수치스러움에 묻어두고 방치하며 살았다. 나의 소중한 몸을 돌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았다고 해서 나 자신까지 나를 포기하지는 말아야 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 덕분에 나는 나를 치료하고 몇 년 뒤 우리 딸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돌보며 살고 있다. 관심을 기울이며 챙기기 시작하니 예전같은 고통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첫 생리하던 날 할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고 한다. 파티와 등짝 스매싱 사이의 그 먼 거리만큼 아팠던 엄마의 상처가 엄마도 모르게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 같다.

당신은 전설의 주인공인가, 등짝 스매싱의 후손인가?

만약 후자라면 당신도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먼 미래의 아기를 위해서 오늘 당신의 자궁과 화해를 해보는 건 어떨까?

몸은 스스로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마음 상태에 따라서는 스스로를 공격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당신의 아기 궁궐, 자궁을 축복한다.



이지은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written_by_leej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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