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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털이 솟구쳤다

놀잇감도 좋지만

by 명랑 숙영

엄마는 외출할 때 무료하지 말라고 놀잇감을 만들어준다.

엄마 냄새가 나는 양말에 간식을 넣어 돌돌 말고 공 속에도 넣어준다. 처음엔 어떻게 하는지 몰라 물어뜯기만 했는데 이젠 '식은 죽 먹기'다.

엄마는 아빠보다 치사하다. 아빠는 간식을 여러 개 주는데 엄마는 '뭘 잘해야' 한 개씩 준다. 어떨 땐 콩알만 하게 쪼개 주기도 한다. 작은 간식 한 개가 입안에 들어올 때는 별 맛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서너 개가 입속에 들어오면 맛이 퍼지고 몇 번 씹을 사이도 없이 ‘꿀꺽’하고 목구멍을 타고 깊은 곳으로 도망가버린다.


엄마가 구멍 난 타원형 공 속에 간식을 넣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침을 꿀꺽 삼켰다.

'딸랑딸랑'소리 내며 공이 날아온다. 앞발을 살짝 들었을 뿐인데 정확하게 내 입속으로 들어왔다.

“어이구, 우리 자두! 공도 잘 받네!” 엄마의 칭찬이 쏟아진다.

이번엔 멀리서 양말이 날아온다. 나이스 캐치! 두 번째도 물론이다.

엄마는 거리계산이 정확하므로 날아오는 물체를 쉽게 받을 수 있다. 던지고 받는 놀이를 할 때 엄마와 나는 죽이 잘 맞다.

엄마가 어디갈 모양인지 껌일 준다. 혼자 있을 때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외출할 때는 특별히 씹는 것을 준다.

어떤 맛을 줄지 궁금하다. 엄마도 어떤 것을 줄지 망설이는 눈치다.

“자두야, 포도 맛 줄까? 치즈 맛 줄까?

난 입맛을 다시며 '치즈! 치즈!'라고 속으로 외쳤다.

아빠가 초록색 병에 든 물을 마시며 치즈를 먹을 때 난 한시도 엉덩이를 떼지 못한다. 그 순간 아빠 바라기가 되고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그 모습을 엄마가 보았다면 치즈를 제일 좋아한다는 걸 알 텐데.

다행히 엄마가 치즈껌을 물려주었다. 예전에 엄마가 던진 껌에 이빨이 부딪혀 아팠던 적이 있는데 엄마가 무척 미안해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젠 껌을 던지지 않는다.

엄마가 묵직한 검은색 가방을 메고 서둘러 나간다. 십중팔구 어둠이 깊어져야 돌아올 것이다.

엄마와 헤어지는 건 싫지만 거실과 안방에 놀잇감이 널려 있으니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계단 내려가는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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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속에서 간식 냄새가 난다. 입구에 주둥이를 박고 혀를 날름거려 간식을 꺼내 보려 하지만 소용없다.

한쪽 앞발은 입구를 누르고 다른 발로 긁어서 꺼내려고 했지만 맘처럼 되지 않았다. 주둥이로 양말을 물고 앞발로 긁어 접혀 있는 부분을 풀었더니 침범벅이 되었다. 그 속에 간식이 '날 잡아 잡숴'하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한 번 더 펼쳐보니 또 있어 신기했다. '속에 뭐가 있나' 싶어 이번엔 양말을 물고 공중에서 좌우로 흔들어 보았다. 콩알만 한 간식이 '툭'하고 거실 바닥으로 떨어져 깜짝 놀랐다.

간식 찾기에 몰두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공부방에도 가보고 주방에도 가보았지만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엄마가 물려준 껌만 거실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비로소 혼자라는 걸 알았다. '간식 찾기'에 흥미를 잃고 거실에 잠시 서 있다가 침대로 올라갔다. 배를 깔고 두 앞발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잠이 스르르 들려고 할 때 들릴 듯 말 듯한 발소리와 함께 ‘삐삐삐삐’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덜컥 났다. 낯선 사람이 분명하다. 만약 엄마나 아빠였다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현관문 쪽에서 뭔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난다. 살며시 일어나 거실을 지나 조심히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뒤 목덜미부터 등을 지나 꼬리까지 서서히 털이 솟구쳤다.

신발장 쪽으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무서워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현관문 앞으로 가서 짖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겠다.

이럴 때 엄마나 아빠가 있으면 목청껏 짖고 달려 나갈 텐데 지금은 혼자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거실 모퉁이를 돌아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문이 살짝 닫히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건 뭐지? 내가 뭘 잘못 봤나?'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침대로 돌아와 귀를 쫑긋 세우고 엎드렸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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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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