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가 등가죽에 붙는다 한들

개 이기는 부모 없기!

by 명랑 숙영

엄마가 멀리서 사료 봉지를 들고 흔든다. 밥 먹으라는 뜻이다.

난 물끄러미 바라볼 뿐 엄마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자두야, 밥 먹어!”

엄마가 사료 봉지를 한 번 더 흔들었고 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니, 너는 왜 밥을 안 먹어?”

밥 먹기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지만 식욕이 없었다.

엄마는 속상한 듯 사료 봉지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처음부터 사료 봉지를 들고 흔든 건 아니다.

밥을 줘도 내가 먹지 않자 반응을 보고 밥을 줄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모양이다.

밥때가 되면 엄마는 사료를 적당량 담고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갔다가 ‘그냥 밥’인 거에 실망해 입도 대지 않고 돌아섰다.

엄마는 몇 번 권해도 먹지 않자 볼멘소리로 “먹기 싫으면 말아”라며 밥그릇을 치워버렸다.

순간 사라져 버린 밥이 조금 아쉽지만 버티면 좋아하는 밥상이 차려질 걸 아니까 괜찮다.

나도 처음부터 사료를 잘 먹지 않은 건 아니다.

엄마 아빠가 먹는 별나고 맛난 음식을 얻어먹다 보니 자연적으로 사료는 멀리하게 되었다.

맨날 똑같은 냄새와 맛에 언젠가부터 먹고 싶은 생각이 1도 들지 않았다.

가끔씩 사료 맛이 조금 바뀔 때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사료는 사료'일뿐이다.

배가 고파도 참으면 엄마가 입맛 도는 음식을 주니 먹을 필요가 없다.


어두워질 때까지 엄마는 '간식다운 간식'을 주지 않았고 배는 등가죽에 붙었다.

이젠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체 '먹는 시늉'이라도 할 참이었다.

엄마를 오래 기다리게 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때마침 엄마가 주방에서 사료봉투를 들고 흔들었다.

엄마 눈치만 보던 난 슬며시 일어나 밥그릇 앞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보니 또 ‘그냥 밥’이라 식욕이 달아났다.

돌아서려고 하는데 엄마가 내 머리 위에서 '알'을 흔들었다.

왠지 밥을 먹으면 그걸 줄 것만 같았다.

난 머리 위 알을 한번 쳐다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는 싱크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내가 먹는 모습을 '엄마미소'로 지켜보았다.

엄마를 의식하며 ‘와그작와그작’ 씹어먹고 조금 남겼다.

알을 먹을 생각에 식욕이 떨어졌다.

대신 밥그릇 주변에 떨어진 사료는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주워 먹었다.

이상하게도 엄마는 '흘린 사료'를 주워 먹으면 돌고래 소리를 내며 좋아한다.

“아유, 우리 자두 밥도 잘 먹네”

"흘린 것도 주워 먹다니, 착하기도 하지!"

엄마의 칭찬에 꼬리가 자동으로 360도 춤을 추었다.

엄마의 다음 행동을 안다. 왜냐, 학습되었으니까.

난 머리는 '그냥저냥'인데 '눈치'는 빠르다.

엄마는 자그맣고 동그란 조리 기구를 꺼냈다.

내 혀는 이미 그 음식을 맛본 듯 주책없이 날름거렸다.

난 두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엉덩이를 바닥에 착 붙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자세다. 이러고 '딱'기다리고 있으면 엄마는 무척 기특해한다.

주방에선 뜨거운 열기와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글지글 소리가 났다.


잠시 후엔 행복이 입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엄마가 구워져 납작해진 알을 밥그릇에 옮겨 담고 잘게 부수어 '후후' 불어주었다.

밥그릇 속엔 노란색과 흰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씹을 틈도 없이 행복이 순식간에 못 젖을 타고 어둡고 깊은 구렁으로 넘어갔다.

그 행복은 약간 비릿하고, 고소하며, 부드럽고 자꾸 당기는 맛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 버티면...

sticker sticker
keyword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