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고 넘어져라

잘 넘어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

by 파란

'펑-!'


손바닥으로 매트를 내려치는 순간

공기를 가르며 경쾌한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진다.


"자, 이건 낙법이야. 몸에 들어오는 데미지를

손바닥을 통해 분산시켜 내 몸을 안전히 보호하는 거야."


우리 체육관은 항상 새로운 관원이 오면

낙법을 먼저 알려준다. 특히 후방낙법을 통해

안전하게 바닥에 넘어지는 법을 제일 먼저 배운다.


"한번 똑같이 따라 해보자, 내가 잡아줄게"


새로운 관원의 뒷목을 잡아주며

뒤로 살짝 밀어주니, 지레 겁을 먹은 눈빛이 보인다.


'톡-'


매트를 강하게 내려치는 그였지만

생각만큼 경쾌한 소리가 나지 않자

당황한 관원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저는 왜 사범님처럼 경쾌한 소리가 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으레 그렇듯, 우리 관장님처럼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한다.


"많이 넘어져보면 돼."


그리고 한마디를 더 붙인다.


"여기 계신 분들은 낙법을 치는 소리에 익숙해.

눈치 볼 것 없어, 강하게 매트를 내려치면 돼."




우리는 모두 넘어지지 않으려 애쓴다.

일상도, 사람도, 내 삶도.

하지만 인생사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듯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넘어지는 일은 너무나도 잦다.


최근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들이닥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하아"


벽을 짚고 일어나니, 서늘함이 내 손끝에서 퍼지며

마음까지 시리게 아려온다.

밖을 보니

눈이 온다.




무언가에 홀린 듯 급하게 채비를 마치고 나와

무작정 동네 뒷산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휘날리는 눈발은 상관없었다.

그저 마음이 요동쳤고, 어떻게든 잠재우고 싶었다.


산 입구에서부터 설경이 펼쳐졌고

소복히 쌓인 눈들이 나무 위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먼저 산을 올라가셨던 분들의 발자국을 따라

그저 오르고 올랐다. 어떻게든 마음의 짐을 떨쳐내고

나를 갉아먹는 안 좋은 생각을 잠재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


눈발이 더욱 거세지며 길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남겨놓은 발자취는 온데간데없고

사방엔 새하얗게 쌓인 눈들만 가득했다.

자칫하면 길을 잃고 넘어질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어. 가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길을 뚫고 올라갔다.

정강이만큼 쌓인 눈길에 발이 푹푹 빠졌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길이 없으면 내가 뚫고 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정상까지 올라오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다.

생각 없이 그냥 뛰쳐나왔기에 아이젠이나 장비가 없어서

이젠 내려갈 일이 막막했다.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내려가던 도중

몇 번이고 넘어졌다. 몇 번이고


"후웁-!"


순간 넘어지며 나도 모르게 팔을 짚었다.

어깨와 팔꿈치가 뭐에 얻어맞은 듯 저릿거렸고

그대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러움 섞인 눈송이가 내 뺨 끝에 녹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짓수나 유도 등, 그래플링 무술의 공통점은

'넘어지면서 팔을 짚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면 오히려 크게 다치게 되고

그럴 땐 과감하게 넘어지며 차라리 낙법을 치는 게

내 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습게도,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운동을 벗어나면 나는 아직도 내 인생에 있어서

화이트벨트와 다름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설산을 내려오는 건, 올라가는 것보다 더욱 가혹했다.

넘어졌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몇 번이고

정말 이러다가 잘못하면 크게 다치겠다 싶어서

잠시 쉬어가려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


앞을 보니 가파른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었고

머릿속으로 발칙한 생각이 떠오른다.

엉덩이.

썰매.


순간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발바닥을 박차고

엉덩이로 썰매를 타듯 내리막길에 몸을 던졌다.

과감하게 넘어지기로 결심하고 몸을 내던지니

생각보다 안전했다. 그리고 빨랐다.

참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도 입꼬리가 올라가며

난 웃고 있었다.


눈과 진흙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었지만

몇 번이고 몸을 내던지고 내던져

차디찬 설산을 뚫고 내려왔다.

산 입구 여울목이 고인곳에 다다르니

그제야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상했다.

늘 내 입으로 말하던 '잘 넘어지는 법'을

막상 상황이 닥치니 기억해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내 몸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잘 넘어지는 법을 말이다.


그렇게 설산을 뒤로 한채

하얀 입김을 고르며

나를 기다리는 집으로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톡- 톡-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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